2. 중환자실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간다는 중환자실, 내게도 회색지대였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을 어떻게든 끌고 오려하는 곳이자, 그럼에도 잿빛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내가 깨어났을 땐 주변에 사람이 가득했다. 바이탈을 체크하며 정신없이 나를 불렀다.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우리나라 이름이 뭐죠?
생년월일 말해봐요.
오늘이 몇 월 며칠이죠?
많은 질문에 비몽사몽 답하던 나는 급기야 말했다.
"저, 언제까지 물어보실 거예요?"
간호사들이 내 손과 발을 잡고 감각을 확인했다. 몇 번째 손•발가락을 잡았는지 맞추라 했다.
그때 나는 손발에 모든 감각은 있었지만 저린 감이 심했다. 그렇지만 겨울에 비슷한 통증을 느껴본 적이 있어 큰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손과 발, 팔다리를 움직여보라는 말에 힘을 막 줘도 꿈쩍 안 하자 당황했다. 수술 이후라 그렇다고 생각했다.
움직이고 있냐는 말에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곧 움직일 거라 했지만 아니었다. 꿈인가 싶었다.
그동안 헌혈해 온 만큼의 피를 수혈받으며, 수액을 맞으며 나는 눈만 깜박였다. 시간은 흐르는데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벽엔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안경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귓가로 들리는 소리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짧은 면회시간, 부모님을 만났다. 마스크와 방호복으로 감싼 모습, 울먹이는 목소리의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들어왔다.
우리는 단지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만질 뿐이었다.
부모님의 눈은 부어있는데 핼쑥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그저 나는 밥 챙겨 먹으라고, 난 괜찮다고 말했다. 웃는 나를 보며 부모님의 눈시울은 더 붉어졌다. 그럼에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웃음이 지어진 것이다. 부모님을 봤기에.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투닥거려왔음에도 눈 뜨니 가장 보고 싶었던 이들이 가족이었다.
응급수술 이틀 후 경추와 흉추 수술이 잡혔다.
당시 난 신경수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지하지 못했다. 분주한 중환자실에서 수술준비를 하며 간호사들이 날 웃음 짓게 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몰랐다. 가족들이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음도 미처 몰랐다.
간호사 한 분이 내게 엄마가 밖에서 많이 울고 있으니 강한 모습을 보여주라 했다. 가장 약한 내가 가장 강해 보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내 침대가 수술실을 향했다. 잠시 가족들을 만났다.
난 괜찮다고, 잘 해내고 올 테니 밥 챙겨 먹으라 했다. 끝까지 식사는 했는지 묻던 나를 엄마는 요즘도 떠올린다. 그놈의 밥이 뭐라고, 그렇게 걱정을 했는지. 병원에서 아무것도 못 먹던 엄마는 그날 이후로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침대 뒤로 날 부르며 우는 엄마 목소리가 자꾸 들렸다. 내 양쪽으로 간호사들이 서 있었다. 내 신경을 분산시키는 소음과 분주한 발걸음 사이로 나만 웃고 있는 게 이질적이라 느꼈다.
그렇게 척수신경수술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