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Waste no fresh tears over old griefs.
에우리피데스 (BC480~BC406)
1. 지나간 슬픔에
슬퍼지고 싶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슬픔은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다. 또한 감정이라는 친구는 시간 선상에서 독립적이지 않아서 과거일 수도, 현재일 수도, 미래일 수도 있다. 즉, 시간 안에서 감정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하니 지금 행복하고, 이 행복이 계속될 것 같다.’라는 문장에는 과거-현재-미래가 들어있으며, 감정이 시간을 관통하며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의 어릴 적을 생각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학생이 미래에 되고 싶은 모습을 그리며 설레는 것도, 시간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는 감정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명언의 시작인 ‘지나간 슬픔’에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상의 감정이 담겨있다.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칫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슬픔이라는 단어 때문에 지나간 슬픔에는 부정적인 감정만 담겨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지나간 슬픔을 기억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에 감정이 동하여 또다시 슬퍼질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희망을 느낄 수도 있다. 과거의 실패를 생각한다고 실패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뜨거운 정열과 성취에 대한 갈망, 그리고 불타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매 순간 감정을 찍어내고 있고, 현재에 사용된 감정은 바로바로 과거의 감정이 되어버린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지만 계속해서 과거로부터 열심히 감정들을 끄집어내어 현재 순간에 느끼게 될 것이다. 감정이 자유롭게 시간을 아우르는 복합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감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스킬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해져야만 하겠다.
2.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지나간 슬픔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위 노래의 가사처럼 지나간 것에는 고유의 의미가 담겨있는데, 사람들은 그 의미를 보려 하지 않고, 심지어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슬픈 일을 겪었다면 그 순간에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그 감정이 시간이 흘러 새로운 하루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을 과거에서 잘 해결한다면 그 감정은 배경(Background)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늘의 감정처럼 전경(Foreground)에서 나를 마구 휘두를 것이다. 이는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사람을 치료하는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삶의 전경에 계속 떠올라서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내가 자꾸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기원전 5세기의 에우리피데스는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다. 지나간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은 곧 오늘의 슬픔에 충분히 새로운 눈물을 사용하라는 것이며, 심리학으로 해석하면 지금 이 순간(here & now)에 온전히 존재하라는 말이 된다.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지금 이 순간(here & now)은 아마 2000년 후에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