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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Jul 02. 2021

'슬의생'과 스파이더맨

판타지와 현실 속의 히어로들

“슬기로운 의사 생활” (이하 ‘슬의생’)이 시즌2를 시작하였다. 방영 당시 시즌1을 보지 않고 ‘언젠가 봐야지’라고 생각만 하던 나는 시즌2가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밀린 방학숙제처럼 부랴부랴 시즌1을 정주행 하기 시작하였고 시즌2 방영 직전에 숙제를 마칠 수 있었다.


슬의생을 볼 때마다 “와~ 이거 판타지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배경이 병원이고 주인공들의 직업이 의사라는 현실적인 소재로 벌어지는 드라마라서 오히려 더 판타지로 느껴진달까?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을 보면서는 ‘참 현실성 있게 잘 만들었네’라고 하던 내가 슬의생을 보면서는 판타지라고 느끼는 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판타지 주인공들은 이런데 살아야 하는데 (출처 : Unsplash)


슬의생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동안 환자나 보호자로서 병원에 갔을 때 느껴본 적이 없는 의사들의 인간적인 배려라던가 교수들의 수련의(전공의~인턴)들에 대한 소탈하고 탈권위적인 모습들, 잘생기고 이쁘고 똑똑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들이 대학시절의 우정을 이어가며 여가 시간에 밴드를 한다던가.. 이 드라마가 판타지로 느껴질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 주인공들 중에서 마른 사람들이 엄청 잘 먹는데도 그 몸매가 유지되는 부분에서는 판타지를 넘어 사회 부조리까지도 느껴지더라. 시즌2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PPL을 하는데 갑자기 벤츠를 타고 다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오히려 이 판타지 속에서 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은 이 멋지고 잘난 주인공들이 타인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부분이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혹은 울림을 주는 많은 부분은 바로 이 공감과 이해에 있다. 보통 공감과 이해라고 하면 그 대상을 나와 상대, 쌍방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슬의생은 조금 다르다. 슬의생의 주인공들은 그 자리에 없는, 자신들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제3의 타인들에게 공감한다. 단지 공감을 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떠올리지 못 한 상대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시즌1 첫 화에서 장기 기증자가 생겨 기뻐하는 가족에게 젊은 나이에 사고로 사망한 기증자를 떠올려 주기를 부탁했고, 최근 시즌2 2화에서는 자신을 전공의로 착각하고 무시하다가 교수임을 알고 태도가 바뀐 환자의 부모에게 전공의도 환자를 잘 보살피는 의사임을 설명하였다. 아이가 치료를 거부해서 미안해하는 부모에게는 이미 아이가 큰 치료를 잘 견디고 있음을 이해해달라고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이며 동시에 비인간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해당사자인 나와 상대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이러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슬의생이라는 판타지의 주인공들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인 것일까?


(출처 : Reuters)


지난 6월 23일 바티칸에서 열린 프란체스코 교황 알현 행사에 VIP 방문객으로 스파이더맨이 초청되었다. 그는 병원에서 투병하는 아이들을 방문하여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는 이탈리아 북서부 사보나 출신의 마티나 빌라르디타라는 20대 남성이었다. 교황청은 그를 “진정한 슈퍼히어로”라고 평가하였다.


진짜(?)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타고 거미줄을 쏘는 능력이 없어도 마티나 빌라르디타는 충분히 히어로이다. 생각해보면 히어로들이 위대한 점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슈퍼파워 때문이 아니다. -같은 힘을 가지고도 빌런이 되기도 하니까- 히어로를 히어로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선의와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슬의생 주인공들처럼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고 마티나 빌라르디타처럼 교황을 만날 정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히어로들을 동경하며 빨간 망토를 둘러보거나 점프하면서 거미줄 쏘는 흉내를 냈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더 이해해보고 그 이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도 히어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거미줄을 쏘고 하늘을 날며 악당을 무찌르는 것보다는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이번 주에 슬의생에서 또 어떤 판타지가 펼쳐졌을지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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