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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lay Sep 11. 2018

제대로 액땜한 그날

좌충우돌 춘천 입성기


2017년 6월 20일 


 춘천으로 시험을 보러 가던 날, 그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이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100번은 얘기한 것 같다.


 당시 나는 여의도 인근의 경제방송에서 캐스터로서 새벽 방송을 담당하고 있었다. 6시에 시작하는 첫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새벽 3시에는 기상해야 했다. 3시에 일어나 가볍게 샤워하고, 부랴부랴 운전해 출근하면 4시 반쯤. 그때부터 치열한 방송 준비가 시작된다.


 밤 사이 미국과 유럽의 증권시장을 분석해, 우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리해 브리핑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방송 진행뿐 아니라, 대본 준비, 외신 번역, 콘텐츠 구성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해서 새벽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특히 프랑스 대통령 선거나 유가 급락 등 세계 시장에 큰 이슈가 있을 때면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새벽 방송을 마치면 오전 10시쯤. 동료들과 커피 한 잔 하며 오늘의 방송을 평가하고, 내일의 방송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려 눈이 스르르 감긴다.


 춘천으로 시험 보러 가던 날, 난 딱 그 상태였다.

 마치 전쟁을 막 끝낸 전사처럼.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매일 새벽 치열했던 경제방송 캐스터 시절


 여의도에서 춘천까지는 대략 2시간. 최대한 여유 있게 도착하고 싶어 속도를 냈다. 마음은 급했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으니 제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기를 바랐을 뿐. 다행히 내비게이션에 찍힌 예상 도착시간은 시험 시작 20분 전. 충분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은 집에서 준비해 온 과일과 약간의 빵으로 대신했다. 방송 전에 커피 등 부담스러운 음식을 피하는 편이라 중요한 시험 전에는 최대한 가볍게 먹는다. 당이 떨어져 집중력에 방해되지 않을 수 있는 선에서.


 춘천 초입까지는 막힘없이 시원하게 달렸다. 서울에서 춘천을 잇는 고속도로가 평소에도 자주 막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긴장했지만, 남춘천 IC를 벗어나기까지는 예상시간 그대로였다.


 하지만 시험장까지 도착 10분 남짓을 남기고 일이 터져버렸다. 중고로 구입한, 누적 주행거리 20만 킬로미터에 도달하고 있는 내 차가 길에서 퍼져 버린 것. 교차로에서 흰 연기를 내뿜더니 덜덜덜 굵은 쇳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멘. 붕.


 일단 비상등을 켜고 재빨리 차를 갓길로 옮겼다. 시험 시작까지는 20분 정도가 남은 상황.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온몸에는 식은땀이 났다. 차의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원인을 모르겠다. 몇 분 지나니 흰 연기는 잦아들었고, 덜덜덜 쇳소리도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시동을 다시 걸어보니 10분 정도는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장에 늦지만 말자는 생각으로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도착한 삼천동 언덕의 방송국. 늦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일단 구석에 주차하고, 시험장으로 바쁘게 향했다.


 이날 시험은 카메라 테스트와 면접이 동시에 진행됐다. 지역 방송사의 경우에는 이처럼 한 날 모든 시험을 보는 경향이 있다. 대기실에 앉아서 숨을 가다듬고, 카메라 테스트와 면접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 차를 끌고 어떻게 집까지 갈 것이며, 어느 정비소에 가야 할지,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지 등등... 차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뉴스 스튜디오로 안내를 받았고, 앵커석에 앉아 준비된 원고를 리딩 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집중해서, "기본만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이어진 면접에서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기본으로 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며칠 동안 준비해 온 멘트들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흰 연기를 내뿜던 내 자동차가 계속해서 떠올랐으니까.


 시험이 끝나자마자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가장 가까운 카센터로 달려갔다. 수리 시간과 비용을 듣고 경악했던 것도 잠시, 다음날 새벽 출근해야 할 생각에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급하게 일부만 수리했고, '집 까지는 무사히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한 마디에 바로 춘천을 쓸쓸히 떠나왔다. 닭갈비도 먹지 못한 채.


 혹시나 시동이 꺼질까 봐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오후에 에어컨도 켜지 못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려 저녁 늦게야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그날 나의 번진 화장, 엉망이 된 머리, 땀에 절어 있던 흰 셔츠, 후들후들 떨리던 내 두 다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나의 새로운 일자리, 춘천MBC의 낮(좌)과 밤(우)


 며칠 뒤 합격 전화를 받았고, 내가 왜 합격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이 오히려 면접에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합격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우리 엄마는 '제대로 액땜한 것'이라고 위로했고, 나의 합격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렇게 나와 춘천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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