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홀로 간 것은 그 길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은 나의 인생길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안겨준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페인 나라를 가게 되었고, 전세계 각국에서 온 남녀노소의 순례자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함께 걷다가 헤어지는 마지막 날 밤에는 파티도 함께 한 외국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볼 때마다 BFF(Best Friend Forever)를 외치면서 환하게 웃었다. 지금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소통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 환하고 예쁜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본다.
클라우디아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글에서 소개한 로르카 마을 알베르게였다.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한국인 아줌마가 호의를 베풀어서 2인실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 2인실의 룸메이트가 클라우디아였다. 2인실에서 단 둘이 있게 되었으니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처음에는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낮에 25~30km를 걷고 도착하는 알베르게이기에 쉬고 싶은 마음도 있고 처음 만나게 되는 외국인과 얘기를 나눌 수 내용들이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영어 실력도 안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순례길에서 사용했던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가장 저렴한 혼성 도미토리였기에, 눈이 마주치면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대화로도 충분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에서 2인실 숙소에서 자는 것은 로르카 알베르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이 방에서 클라우디아를 만난 것이었다. 정말 인연 중의 인연이었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클라우디아와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먼저 따뜻한 물에 피곤한 몸을 깨끗이 씻었다. 인상이 밝고 선해 보이는 클라우디아였지만, 내가 피곤한 만큼 클라우디아도 피곤할 것이라 생각하고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만 대화를 나누고 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다. 다음날 여정도 있으니, 적당하게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는 것도 필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날 밤,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낯선 이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엄청 신기한 경험이었다.
클라우디아는 세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첫번째는 20대 청년의 시기에, 두번째는 10여년 전에, 이번이 세번째 순례길이었다. 산티아고 길에 대해서 전문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정말 사랑하는 이였다. 독일인인 클라우디아는 20대 때 첫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서 바르셀로나에서 6개월 동안 일도 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웠다고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인생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용기있게 시도하는 아줌마였다. 한국에서 나도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용기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지지 않는 모험적인 아줌마라고 자부하는데, 클라우디아의 용기 있는 실천적 삶은 나의 두배는 너끈히 되는 것 같았다. 클라우디아의 인생 스토리를 듣는 우리의 첫날 밤은 5월의 밤하늘만큼 아름다왔다.
클라우디아는 독일 만하임에 살고 있는데, 역사가 깊은 만하임 성이 참 아름답다고 꼭 한 번 오기를 권하였다. 클라우디아와 나는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미래 어느 날에 함께 독일을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클라우디아의 직업은 전차 운전기사였다. 순례길을 걷고 독일로 돌아가면, 전차 운전을 다시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그녀의 씩씩한 삶에 감탄하였다. 이후 독일로 돌아간 클라우디아는 그가 운전하는 전차 앞에서 찍은 아침 출근 사진을 보내왔다. 그녀와의 진한 우정은 지금도 가끔 전해오는 메시지를 통해서 느끼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전문가이면서 독일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스페인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는 클라우디아와의 이후 3일간의 동행은 나에게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순례길의 선물이었다. 함께 길을 걸으면서 호수를 만나면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공원에 들어서면 벤치에 앉아서 스페인의 5월을 날씨를 즐기고, 길고양이를 만나면 잠깐 멈춰서 만남의 정을 나누고, 예쁘장한 카페를 만나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고, 걷다가 배가 고프면 로컬 식당에 들어가서 스페인의 정겨운 로컬 푸드인 문어 타파스도 먹으면서 우리는 3일간의 동행을 즐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3일간의 순례길 친구였다. 언젠가 60대를 살아가는 어느 날, 그녀와 함께 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도 참 재미날거 같다.
영국인 친구 데비는 사진 작가이다. 카키색을 좋아하는 데비의 소지품 어딘가에서 카키색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때로는 그녀의 스카프에서, 때로는 그녀의 작은 가방에서, 때로는 그녀의 트레킹 재킷에서 카키색은 살포시 자리잡고 있었는데, 데비를 만날 때마다 카키색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녀만의 개성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비도 60세라는 그녀의 인생 여정만큼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씩씩한 두 아들을 홀로 키운 인생 이야기, 사진 작가로서의 전문성을 키워가는 멋있는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걷게 된 스토리 등 아직도 소녀같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데비도 진한 인생 스토리를 품고 있었다.
이번에 데비가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먼저 걸었던 첫째 아들의 강추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이지만, 첫째 아들이 엄마도 그 길을 꼭 걸었으면 좋겠다고 추천해서 용기를 내어 걸었다고 했다. 60대의 여성으로서, 사진작가라는 전문가로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아들의 추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데비도 나처럼 매일 동키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가벼운 배낭만 메고 걸었다. 매일 25~30km 를 걷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는 건강을 가지고 있었는데, 잠자리는 편한 것이 좋았는지 되도록이면 호텔급인 1인실 알베르게를 이용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알베르게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마을에 도착하면 서로 연락을 하면서 클라우디아와 함께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부르고스는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도시들 중에서 큰 도시에 속한다. 나는 800km의 프랑스 길 중에서 생장 피드포드에서 부르고스까지 300여km를 걷고, 산티아고 순례길부르고스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기차로 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계속 순례길을 걷는 클라우디아와 데비와는 부르고스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부르고스에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순례길에서 맺어진 진한 친구로서의 헤어짐의 아쉬움을 부르고스에서 1박2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달래기로 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부르고스에 도착하면 부르고스 대성당을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데비는 부르고스 대성당 옆에 있는 작은 아트(art) 건물에 흥미를 가졌다. 역시 데비는 예술가였다. 데비의 흥미와 호기심으로 인해 우리는 그 건물에 들어섰는데, 너무나 다채로운 예술 전시에 우리 모두는 기대하지도 못했던 예술을 흠뻑 즐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art 건물에서 제일 처음 들어간 전시룸은 여러 사진 작가들의 사진책들이 가득한 룸이었다. 데비가 사진 작가가 아닌가! 사진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는 사진책 감상은 혼자서 보는 밋밋한 감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데비도 사진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물에 들어가서 데비와 함께 하는 사진책 감상은 최고의 예술 즐기기 시간이었다.
이후에 데비는 부르고스를 출발해서 순례길을 더 걷는 도중에 발목 인대가 아파서 순례길을 다 걷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진 작가로서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의 사진들을 담은 사진책을 냈다. 60대 초반의 데비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집중하여 성취해내는 모습이 참 멋지다. 페이스북에서 그녀의 사진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어서 지금도 그녀를 계속 만나고 있는 것 같고, 그녀의 사진을 통해서 그녀의 생각을 계속 듣고 있다.
일본인 친구인 Megumi를 만났던 이야기는 알베르게 이야기를 했던 7화에서 자세하게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던 메구미가 다음 날 묵을 알베르게를 예약하지 못해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도와준 것을 계기로 친구가 된 메구미였다. 여행 길에서는 작은 도움 하나가 커다란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발을 다쳐서 동키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메구미 부부에게는 다음 날 묵을 알베르게를 예약하는 것이 절실할 때였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것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도 커다란 기쁨이었다. 메구미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니, 일본에 오게 되면 꼭 만나자는 말도 거듭 강조하여 말했다. 그녀의 말하는 모습과 표정에서 정말 꼭 만나기를 기대하는 진정성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나의 마음도 참 따뜻해졌다.
메구미를 만났던 알베르게는 클라우디아도 같이 있어서 우리는 그날 밤 같이 만나서 아줌마 수다를 한참동안 했다. 독일과 일본과 한국의 아줌마들이지만 50대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다음 날 또 순례길을 걸어야 우리들이기에, 자정이 넘어서 우리는 아쉬운 헤어짐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참 아름다운 알베르게에서 너무나 마음이 예쁜 친구들과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5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부르고스의 마지막 날 밤, 클리우디아가 호스트로 준비했고 데비와 메구미와 내가 함께 하면서 우리들만의 축제로 잊지못할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이면 기차로 떠날 나를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BFF 모두가 마련해 준 밤이었다. 우리는 클라우디가 만들어준 음식도 먹고 빵과 커피도 마시면서 각자의 인생 스토리도 나누고, 이후의 순례길 여정도 나누었다. 신나는 음악도 들으면서 간단한 춤도 추면서 엄청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내일이면 헤어질 우리들의 귀한 인연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의 마음 한 켠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이 슬픔이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친구들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기쁜 표정으로 그날 밤의 귀한 시간을 꽉 채웠다.
2024년 5월에 만났던 아름다운 친구들을 또 다시 만날 그 어느 날을 상상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