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by julianne

재택 교육을 받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직접 챙겨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단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아침밥도 맛있게 만들어 주고, 할머니표 코디 말고, 엄마표 코디로 옷도 입혀주고, 우리 딸은 신경 써 머리도 묶어 주고 해야지. 그리곤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며, 밖에서 열심히 손도 흔들고 손가락 하트도 날려줘야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어야지.. 그랬었다.. ㅎㅎ


조금 늦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 아이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삼각김밥을 만들었다. 영양 가득 후리가케도 뿌리고, 햄도 구워 가운데 넣고, 참기름 두세 번 둘러 고소하게, 겉에 김도 잘라 붙여 주니 파는 것 못지않았다. 원복을 입는 날이었지만, 패션의 완성인 양말이라도 시원하고 예쁜 것으로 챙기고, 가방도 미리 챙겨 놓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일어나 나왔다. 더 일찍 깨웠어야 했는데 삼각김밥 만든다고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맛있게 먹어줄 거란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아침이라 입맛이 없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먹다 말다 장난감을 만지고 노는 큰 아이에게 빨리 와 먹으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던 중 유치원 버스가 올 때까지 고작 20분이 남게 되었다. 둘째부터 얼른 씻기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대충 하나로 묶어 주었다. 이제 10분이 남았다. 사내아이니 얼른 씻기기만 하면 옷 입고 나서면 되겠다 싶었는데, 큰 아이는 아무리 불러도 욕실로 오지 않았다. 몇 번의 호통 속에 몸을 질질 끌며 오다가는 모서리에 발이 부딪혔다며.. 욕실 앞에 주저앉았다.. 아... 늦었다. 버스가 떠나는 모습이 눈앞에 스쳤다. 왜였는지 갑자기 회사에서 안 좋았던 일들도 떠오르며 화가 치밀었다.. 나는 결국 큰 아이의 머리에 꿀밤을 매겼다. "으이그. 결국 늦었잖아! 밥도 빨리 먹고, 엄마가 부르면 빨리 오라고 했잖아. 할 일부터 하고 놀아야 한다고 했잖아! 너는 정말 왜 그러는 거니?!!" 그러곤 한번 더 꿀밤을 매겼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겨우 준비를 마치고.. 남편이 나가는 길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하곤 데리고 나갔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웹엑스로 교육을 듣고 있는데, 키즈노트 알림장에 띵동, 큰 아이의 사진이 올라왔다. 내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우울해 보이는 표정,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구석에 의욕 없이 서 있는 듯한 모습에.. 안 그래도 무겁고 미안했던 마음이 커져갔다. 오랜만에 엄마가 등원시켜 주는 날이었는데, 내가 또 망쳤구나. 삼각김밥을 만들게 아니라, 일찍 깨워서 여유 있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아무리 화가 나도 아침부터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건 아니었는데, 꿀밤까지는 더더욱 아니었는데.. 속이 상하고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생일/크리스마스) 카드 아닌 편지를 썼다. 글씨를 읽을 줄 아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꿀밤을 때린 것을 사과하고, 앞으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놀자고 부탁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식탁 위의 편지를 보았다. 누가 자기에게 편지를 보냈냐며 신기해했다. 그러곤 사뭇 진지하게 편지를 읽었다. 그리곤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밥을 먹고, 태권도에 다녀오고, 과일을 먹고 씻고 잘 준비를 했다.

잠에 들기 전 "아가야, 엄마가 아침에는 미안했어, 많이 속상했지?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 엄마가 사과해. 미안하다."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 나도 미안해. 앞으론 할 일부터 하고 놀게"라고 한다.

평소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디고, 저만 아는 것 같았던 아이의 입에서 스스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우리 아가 사람이 다 되었구나. 다 컸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이 밀려왔다..


앞으론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아야겠다 생각했다. 글이란, 마음을 담은 글이란, 말보다 더 큰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오늘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다. 앞으론 꿀밤이라도 아이를 때리지 않겠다는 다짐과ㅠ 오늘의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 덕분에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랑스러움으로 힘을 얻어 살아가고 있다. 부족한 엄마지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 못지않다는 걸, 우리 아가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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