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시모음
효에게. 2002. 겨울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 몸을 지나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데기를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출처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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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다시금 크게 주목받게 된 작가 한강이, 오래 전 아들을 향한 마음을 담아 쓴 시라고 한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나아가는 우리. 언젠가는 떠나 보냄이 마땅한 아이를 바라보는 그 마음은
겨울 바다의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그 모습과 꼭 닮아 있는 것 같다.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 마치 내가 / 그 어떤 것, / 바다로부터조차 널 /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곧 / 너도 알게 되겠지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너의 세상의 전부였던 내가, 네가 떠나야 할 세상이 되어가는 지금,,
서서히 그 헤어짐이 두려워지고,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마음..
멋지게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래도 바라건대, 힘든 어느 날에 너의 위로가 되는 기억이 되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헛되지 않을 것 같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