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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섬 Jun 07. 2023

25개월 아기를 모시는 날들

너와 나의 루틴

오전 6시 30분. 일어나, 하며 작은 손가락으로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나를 깨우는 우리 아기 S. 덕분에 저는 주말도 주중도 모두 오전 6시 반에 일어나고 오후 8시 반에 퇴근하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아기가 참 일찍 일어나고 참 일찍 자죠? 아기를 9시, 10시에도 재워봤는데 항상 일어나는 건 오전 6 시대입니다. 이건 다 저희 남편이 5시부터 출근 준비를 하는 날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누가 공무원은 9-6라고 했나요.(6-9인 거 아닌가요?) 물론 남편이나 남편의 직장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남편은 준비시간이 이르고 우리 아기는 어린 시절의 나를 닮아 밤귀 낮귀가 참 밝아요. S는 남편의 샤워소리에 웅얼웅얼 잠을 깰 준비를 합니다.(얘도 제 나이가 되면 낮잠과 늦잠을 좋아하고 침대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겠죠?)



워킹맘의 마지막 자존심인지, 항상 밥과 메인 반찬은 갓 지은 따뜻한 음식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씻어야죠. 일어나자마자 아기를 조금 안아주고 씻으러 갑니다. 요즘은 남편이 20분 정도는 아기를 봐주다 출근을 해서, 씻고 머리를 말리고 아기가 눈치채지 못하게 부엌으로 갑니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된장닭고기애호박볶음입니다. 닭고기는 냉동실에서 소분한 닭고기를 꺼내서 우유를 담가놓습니다. 이 작업을 하루 전에 하면 좋은데 매번 아침 메뉴는 즉흥으로 만드는 편이네요. 그리고 애호박은 비닐째로 싹둑 잘라서 꽁다리를 버립니다. 누가 이렇게 하면 비닐을 벗기기가 더 쉽다고 하길래요. 비닐을 벗겨서 애호박을 0.7cm 두께로 4개 정도 썰고 그걸 또 절반, 절반, 절반, 절반, 잘라서 작은 사이즈로 만듭니다. 애호박을 먼저 프라이팬에 볶다가 해동된 닭고기를 귀여운 아기 실리콘 주걱으로 쿡쿡쿡 쑤셔서 풀어주면서 같이 볶습니다. 그리고 아기된장을 꺼내 티스푼 절반정도 퍼서 물과 살짝 섞고 모두 함께 볶아요. 그럼 참 맛있는 냄새도 나고 메인 반찬은 완성입니다. 밥은 쿠쿠가 알아서 해주니까요. 참 좋은 세상입니다.


아기는 밥을 야무지게 잘 먹습니다. 걷기 전까지만 해도(14개월 정도) 밥을 잘 먹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걷고 난 후 자기도 에너지를 많이 쓰는지 밥을 잘 먹는 축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밥 안 먹을 때는 어마무시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매일 밥을 하는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도 아닐 정도예요. 아이 입에 야무지게 내가 한 음식들이 쏙쏙 들어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요즘 아이는 등하원도우미 선생님(이모님이라고도 하시지요. 저는 선생님이라고 하는 편입니다.)이 집에 오시기 전에 밥을 모두 먹는 편입니다.


등원할 때 입을 옷을 정해서 소파 위에 정리해 두고, 아이가 선생님을 맞이하고(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 우는 날 절반, 선생님과 놀며 엄마에게 인사를 잘해주는 날 절반) 인사하는 동안 저는 화장을 서둘러하고 옷을 입고 도망치듯 인사하고 회사로 떠납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가 보이려나 하는 감성 젖은 생각도 종종 했는데, 요즘은 버스 타러 달려가느라 바쁩니다.


회사에서는 저도 벌써 8년 차 직장인이라, 알아서 적당히 스트레스받고, 적당히 즐기기도 합니다. 점심시간을 지나고 나면 키즈노트라는 어린이집 어플에서 아이가 재밌게 잘 지내는 사진도 보내주시고, 흐뭇하게 웃으며 또 오후를 보냅니다. 저는 정시 퇴근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5분이라도 나오는 시간이 늦으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10분 정도 더 늦어집니다. 그래서 더 달려서 회사를 나오는 편이기는 합니다. 아이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얼른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도 가득해서 지하철 16분, 버스 15분의 시간은 더디게 가는 편입니다.(물론 배차가 있어 결국 도어투 도어는 1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도어록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하며 외치는 소리가 바로 장난기 가득한 ‘아빠~?’하는 목소리로 바뀌며 ‘나는 엄마 말고 아빠를 기다렸는데~’라는 얼굴을 하는 아이가 등하원도우미 선생님과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녀석 정말이지. 참 귀여운데 참 얄밉기도 한순간입니다. 그래도 퇴근 후에 꼭 안아주는 의식이 있어서 ‘엄마가 두 팔을 벌리면~’이라는 자작곡을 하면서 아이를 기다립니다. 그럼 아이는 꼭 한 번에 안아주지 않고 튕기곤 합니다. 꼭 섭섭하고 슬픈 시늉을 해야지만 다시 달려와서 ‘꼭!’ 하며 꼭 안아줍니다. 그때는 정말 모든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리곤 합니다. 정말 사소한 것으로 스트레스가 풀리지요.


저녁도 아침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다른 점은 남편이 없다는 거죠.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요리도 하면서 몸이 2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아기 목욕을 시켜주셔서 그건 안 해도 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이가 저녁밥을 잘 먹는 날이면 이미 성공한 저녁입니다. 워킹맘 워킹파파에게 워라밸이 별거 있습니까. 그냥 내 아이 건강하고 내 일 잘 마무리하는 거죠. 그리고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는 항상 제 무릎 위에 앉습니다. 그런 스킨십하는 시간을 항상 갖습니다.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은 많은 스킨십을 필요로 한다고 배웠거든요.


아이의 양치를 끝내고 나면 인형친구들이 졸려한다고 얘기해 주고, 엄마도 재워달라고 아이에게 말하면 순순히 함께 침대로 들어옵니다. 아기 침대를 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엄마아빠의 침대에서 자고 싶어 하는 아이덕에, 아기의 싱글침대는 아빠의 몫입니다. 엄마랑 같이 오늘 하루 어땠는지 얘기하다 보면 아이가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음과 동시에 내가 너무 피곤한데 이 아이는 언제 자는가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는 척하면 아이도 스르르 같이 잡니다.(이런 과정 속에 저는 결국 새벽에 화장도 못 지우고 이도 못 닦은 채로 깨거나 아침까지 자버리곤 합니다)


주중의 일상을 이렇게 적고 나니 정말 단조로운데 매일매일이 이벤트로 가득한 날인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25개월 아기를 모시면 나타나는 일들인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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