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성희 Jan 11. 2022

김장하는 날

올해도 우리집은 김장을 했다.


절인 배추가 유행이더라도 우리집은 욕조 가득 배추를 절이고 김장을 한다.


김장을 하면서 여든이 훌쩍 넘으신 할머니는

"배추가 속이 꽉찼네. 다네~ 맛있다~"

안들리는 본인의 귀때문에 집이 딩딩 울리게 크게 연거푸 말씀하신다.


온 몸이 김치양념이 묻고나서야 하루종일의 김장이 끝이 난다.


할머니는 "여기 속 좀 조금 올려봐라~" 며 배추 노랗고 여린 속을 내민다.


"난 이게 그렇게 맛있다~"


40년 가까이 시어머니 수발에 지겨운 엄마는 그런 할머니 모습 기특하고 흐뭇하신지

"실컷 드셔~좋아하시니 많이 드셔여~" 하신다.


나같이 못된 손녀는 힘든 엄마두고 큰 소리로 딩딩 말하며 넙죽넙죽 먹어가며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못한다 만 하는 할머니에 뿔이 났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들었다.


내장탕을 사오면 아빠는

" 나는 내장탕을 좋아하지."


" 나는 회만 먹지."


자신이 좋다는 거, 먹는 거만을 늘 말하신다..


그런데 난 엄마가 '난 뭐가 맛있다.' '난 뭐만 좋다' 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엄마도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을텐데.


시집 오기 전 우리 엄마는

사랑많은 외가에서 나처럼 공주 대접 받으며 이거만 좋아. 이게 좋아.. 했을텐데..


비오는 날이면 이쁜 딸내미 장화를 사오시는 외할머니와 그걸 신겨 업어서 학교로 데려가시던 외할아버지, 누나라면 한밤중에 화장실행도 전등들고 누나를 지켜주던 외삼촌들 사이에서 정말 공주마마였을텐데..


지금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건...

우리가 입으로 먹고 좋아하는 거 말고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뭔지도 모르는 딸내미들과 자신들 입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고 챙겨달라는 늙은 시어미와 남편..


김장하는 날.

우리 엄마는 내 입에, 늙은 시어미의 입에 맛나게 들어가는 김장 김치에도 그저 좋다면 웃는다.








#책과강연

작가의 이전글 게으름이 불편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