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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희 Jan 05. 2022

없다는 것에 마주하기

프롤로그 :

홀로 힘겨움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 바로 고개를 돌리고 말을 걸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힘내고 행복하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1. 비대면의 선물


얼마 전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을 위한 무료 상담이 제공된다는 광고를 보았다. 거기엔 개인 상담, 부부 상담, 가족 상담 등 다양한 상담이 가능하다고 써 있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신청 전화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만나지 못해 힘든 코로나19 상황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편하고 안타까운 상황은 나에게 다행스러운 것이 되어있었다. 바로 비대면이란 선물이었다. 그리고 오늘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상담 또한 비대면 프로그램 줌을 통해 만났다. 상담사는 오늘이 되기 전부터 귀찮게도 메신저를 통해 여러 가지 심리 검사 링크를 보내주었었다. 지친 내게 그것조차 참 귀찮고 울음이 터질 일이었다.

‘그냥 나를 치료해줘. 내 마음을 괜찮은 곳에 데려다줘.’

하지만 난 착한 아이의 가면으로 열심히 검사를 했고 역시 미소라는 가면을 쓴 채로 상담자 앞에 앉았다. 상담사는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익숙한 모습의 자애로운 미소를 띄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적당히 밝고 적당히 정제된 모습으로 그렇게 적당히 전문가의 모습으로 그녀가 인사를 한다. 분명히 그녀에게도 그녀의 감정과 이야기가 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오늘 기분은 어떤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남편과 싸우진 않았는지, 가족이 아픈 건 아닌지, 상사와 트러블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것들은 내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얼른 나를 괜찮게 해 줘. 내 마음을 괜찮은 곳에 데려다줘.’

시간 맞추시느라 힘드셨죠? 퇴근 후 촉박한 시간이셨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상담사는 짧은 인사말을 건넨 후 첫 질문을 했다. “상담이 끝나고 어떤 모습이셨으면 좋으시겠어요?” 상담 목표를 잡는 물음이었다. 상담사는 ‘당신의 마음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어요.’ 아이의 답을 기다리는 엄마의 눈빛으로 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없어도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고 싶어요.”

“누가 없어도 편안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은 사람?”     


2. 왜였을까?


엄마 아빠가 시골 큰집에 간다고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부른다. 방에 누워 책을 보고 있던 나는 귀찮다. 그래도 귀찮은 몸을 일으켜 최대한 괜찮은 척, “응, 잘 다녀와~ 걱정 말고~ 아! 꼭 중간중간 연락하고~”. 난 늘 준비를 했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외출을 하실 때면 이 순간이 부모님과의 마지막일 수 있단 생각에 대한 준비였다. 그렇게 되었을 때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였다. 왜 그런 준비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매번 그렇게 자동적 사고를 하며 자동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최소한이라도 후회와 충격을 줄일 에어백 같은 작용이었을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최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마음 편히 외출하고 오실 수 있도록 밝은 표정으로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때론 내키지 않는 외출과 여행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무슨 이유인가 사고가 나 서로를 잃게 될 거라 내 안의 깊은 곳에 불안이 있었다. 왜였을까? 무엇이 그런 불안을 만든 것일까? 늘 곁에서 사랑과 믿음을 퍼부어주는 가족이었기에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난 부재가 두려웠다. 내 금쪽같은 동생들이 캠프를 가거나 학교에서 늦거나 야근하다가 연락이 안돼면 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미치도록 불안하게 했다. 그렇치만 표현하진 않았다. 그 불안이 전이되어 정말 그런 일들이 생길까 두려웠다. 연인의 외도보다 무섭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찾는 그 자리에서 그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부재였던 것 같다.

부재한다는 건, 내가 불렀을 때 없는 그들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혼자 남아있는다면 내가 없어지는 것을 택하고 싶었다.   

  

3. 세상의 일들엔 이유와 필요에 의한 연결고리가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 공식적으로 회사에서 정시에 퇴근이 보장되는 날. 상담자를 만나는 날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상담을 이유로 칼퇴를 하는 것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직장 상사에게 퇴근의 사유가 상담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잔인하고 비교가 만연한 뉴스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사회에서 상담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해도 우리 회사 직원은 아니길 바랄 테니까. 나 또한 정신이 아픈 것으로 오해받기는 싫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누구나 상담이 자유로워지고 이유가 정당해지게 만들어 준 코로나19가 고마웠다. 몇 번의 비대면 상담이 진행되었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익숙하게 로그인을 하고 입장하면 그녀가 밝은 미소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 난 공황장애, 불안장애와 함께 삶을 살고 있다. 가끔 미치도록 괴롭고 힘들어 전문가의 도움과 위로받고 싶을 때 상담을 받으러 혼자서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문화의 확장은 나에겐 너무 반갑고 가능성을 주는 기회였다.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홀로 새로운 사람이 많은 장소를 가는 것, 내가 갇혀있다고 느끼는 엘리베이터 뿐만 아니라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조차 힘겨움이다.

“왜 대중교통이 힘들까요?” 상담사가 묻는다. “글쎄요. 제가 원할 때 그 공간에서 나갈 수 없어서인 것 같아요.”

“원할 때 나갈 수 없다는 건 정해진 정류장에서만 문이 열려서인가요? 잠시 기다리면 다음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면 내릴 수 있어요. 그걸 알고 있지만 갑자기 불안이 몰려오는 느낌이신 거군요?”

상담사의 이어진 질문을 듣고 ‘내가 왜 그런 거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힘들었던 나를 기억하며 대답한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세상을 누비고 살고 싶던 제가 버스나 정류장 하나를 지날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 게 이해가 안돼고 억울하고 슬퍼요.”

선천적으로 내가 반갑지 않은 공황과 불안이라는 신경증적 증상과 함께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가슴 아픈 사랑 때문이었을까. 가족을 위해 자신의 버거운 삶을 술에 기댄 아버지로 인한 상처 때문일까. 꿈 많은 소녀의 이루지 못하는 꿈 때문일까.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들은 나의 전부를 휘두르는 동반자가 되었고 나는 늘 그들에게 지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그 두려움과 불안이 무엇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인 것 같나요? 어렵겠지만 가장 먼저 올라오는 단어나 느낌을 말해도 좋아요.” 차분하고 다정하게 상담사가 천천히 내 대답을 기다린다.

“음.”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수년 간 찾고자 했던 답이었다. 가만히 내 안의 울림을 느껴보았다.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을 느끼며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보았다.

‘‘부재’인 것 같아요. ‘부재’일 것 같아요. 그러네요… ‘부재’가 무서워요.” 정확히 말해 ‘부재’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네. 그렇군요. 무언가 없다는 게 두려우신 거군요. 무언가 찾을 때 없는 ‘부재’한다는 게 힘드셨네요. 혹시 최근에 예를 들만한 경험이 있으실까요?”

         

4. 내가 원하는 건 거기 없다.


남편이었다. 그는 늘 곁에 있었다. 돌아보면 뒤에 있고 옆을 보면 옆에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곳에 내 발이 되어 함께 가 주었고 어쩌면 먼저 가 있었다. 공황을 앓게 된 후 만난 그는 내가 과거에는 도전적이고 어쩌면 무모할 수 있는 낙관주의자에 이상주의자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난 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삶을, 아니 내 삶을 이룰 수 있을 거란 꿈. 7년에 가까운 긴 연애는 결혼이 주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으며 그저 약간의 이해와 책임이 한 스푼 씩 더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한 스푼의 이해와 책임은 매우 큰 것이었다. 그에게 느꼈던 안심과 평온과 희망은 현실의 옷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그의 아주 늦는 퇴근을 기다려야 했고 주말엔 피곤에 잠든 그를 바라봐야 했고 넉넉하지 못한 월급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다들 그렇게 꿈을 조금씩 현실에 맞춰 사니까.

남편과 자주 다퉜다. 많이도 다투게 됐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은 그것이었다. “그냥 우리도 남들처럼 받아들이고 살면 안 될까?” 남편의 생각이었다. 남편의 생각을 알게 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난 꿈을 꾸기 위해 너를 선택한 것인데. 내가 원하는 사람이 거기 없었다. 부재함이었다.


5.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은 사람


“힘드셨고 절망적이셨겠어요.” 상담자의 나의 감정에 답해준다. 그 말은 나를 위로하며 내 안에 억눌렸던 감정이 눈물로 쏟아지게 만들었다. “같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남편 분의 생각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이 놀라셨겠어요.” 내담자의 말을 다시 반복하며 정리해주는 상담의 대화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잘 살고자 또 결혼 후에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자 애쓰던 삶인데 남편이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잖아’라고 하는 부분이 많이 힘드셨네요. 그동안 열심히 사셨고 애쓰셨어요.” 이제는 나에 대해 제법 많이 알게 된 정보와 상담 내용으로 상담자가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나를 치료해주고 내 마음을 괜찮은 곳에 데려다주길 바라던 10회기의 짧은 상담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첫 상담의 첫 질문은 ‘10회기의 상담이 끝나고 나면 어떤 모습이고 싶으세요?’였다. 내 답은 ‘누가 없어도 편안한 사람.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지금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그동안의 나는 갈급하게 의지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마음 편히 기댈 곳을 찾고 있었고 넘치는 사랑으로 나를 다 이해하고 받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를 치료해주고 내 마음을 괜찮을 곳으로 데려가 줄 사람은 다른 사람일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아니기에.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상담 10회기가 금방 지나가네요. 너무나 필요했고 기다려지는 시간들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고 말문이 막혔었지만 제 안을 바라보고 답을 하면서 알았어요. 이제 보니 상담사님의 상담 방법이셨던 것 같아요. 상담사님은 저와의 상담이 어떠셨나요?” 상담이 시작된 후로 처음 먼저 말을 건넸다. 질문도 건넸다. 어쩌면 답은 내 안에 이미 있었다. 파랑새처럼. 갑작스레 창궐한 코로나19의 고통은 대면이 두려웠던 나에겐 비대면이라는 기회가 되었고, 사람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당연한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일상이 얼마나 안락하고 고마운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나도 내가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가 느껴졌다. 무료상담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건 내가 대견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멈추질 않았다. 이미 사랑과 이해가 가득한 나라는 동반자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절대 부재할 수 없는, 부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내 자신이 늘 삶을 버거워하는 나와 함께 해주고 있었다. 늘 함께 있었지만 알아채 주지도, 사랑해주지도 못했던, 존재하는 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내 안의 나를 만나게 되었다. 나와 깊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를 좀 더 알아가고 싶다. 오늘 친해지려 눈을 감고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본다.     

‘안녕! 잘 지냈니? 우리 함께 있음에 감사해! 그동안 기다려줘서 고마워.’          


에필로그:

‘파우스트’에 네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들의 이름은 결핍, 죄악, 근심, 곤궁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무의식에서 억압된 채 억눌려진 콤플렉스들의 원형적 에너지입니다. 이 넷 중 쉽게 우리에게 흘러들어와 우리를 해제시키는 것은 근심이라는 여인입니다. 파우스트도 근심의 입김으로 눈을 멀게 되어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요. 삶의 힘겨운 나머지 세 가지보다 나를 무너뜨리는 것은 근심, 걱정입니다. 잠시 걱정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을 보기로 합니다. 사랑과 따뜻한 이해가 흐르는 나에 기대어 나에게 더욱 귀 기울여주길 바랍니다. 근심이라는 여인이 나를 찾아와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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