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그? - 단편 소설

소설 : 양가감정

by Onlyness 깬 내면

왜 하필 그런 일이 일어 났을까...


성곤은 모처럼 떠나는 주말여행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가려고 하던 길은 하필 사고로 막혀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꿨다. 가는 도중 직장 상사한테 전화가 와 수화기를 통해 간단한 안부와 함께, 일을 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일 예기 때문에 순간 짜증이 낫지만, 얼마 전 가까워진 여자 생각으로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바다 쪽으로 향했다. 따듯한 봄날 그녀와 함께 주말여행을 동행할 수는 없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는 야릇한 약속은 새로운 희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런 날 같이 오면 딱인데... ' 그는 차창 너머 손 바람을 쐬며, 그녀를 생각으로 씁쓸하게 혼잣말을 내 뱉었다. 꽤나 잘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그는 돈에 한 맺힌 이유로 여자를 외면하며 일만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형편이 좋아진 요즘 상황은 욕망을 풀고 싶은 마음에 봄바람과 함께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나름 그는 능력남으로 꽤나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신중했던 그는 쉽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동안 일 때문에 제대로 한번 쉬지 못한 기분은 차와 같이 내달렸다.


-'당신은 내 마음의 한 송이 꽃~♬'

라디오 음악을 따라 부르며 상상에 젖어 있던, 그는 어느덧 바닷가에 도착했다. 갑자기 방향이 바뀌어 도착한 곳은 이미 저녁때가 다 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호텔을 잡아 짐을 풀었다. 하루 긴 시간 차에서 보낸 그는 아쉬움을 달래려 바다가 보이는 카페 겸 바'로 향했다. 바에 도착한 그는 목을 가볍게 풀려고 맥주를 주문했다.


시원한 맥주병에 맺힌 이슬방울들은 조명 빛에 반짝였다. 가느다란 병 입구 쪽에 흐르는 물방울은 여인이 샤워라도 하듯, 병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누군가 옆에 앉더니 테이블 위에 물건을 놓다 떨어 트렸다. 그와 가까운 곳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자


"여기 처음이신가요?"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고맙다는 말 대신 대화라도 하려는 듯 말을 건냈다.


"예... 오늘 처음 오게 됐어요. 처음... 이신가요?"

"네! 저도 처음이에요."

"여행 오셨나요?"

"네, 겸사겸사... 친구랑 약속이 있었는데, 하필 급한일이 생겨서 못 온다네요."

"아, 저런..."

그녀의 말에 그는 형식적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어디선가 한잔한듯 괘심 치레 눈이 풀려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뜻 연상처럼 보였지만, 엷은 조명에 비친 모습은 꽤나 매혹적인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옷과 몸에 걸친 장식품들은 부유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만나기로 했던 곳에 안 가고, 발길 닿는 대로 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아, 그러세요. 하하. 저도 원래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길이 막혀 여기에 오게 되었어요."

"호호호, 사람 인연 참 묘하네요"

"예! 하하하하"

"묘한 인연끼리 한잔 하실까요?"

그녀는 그날의 사연을 말하고는 주문한 칵테일을 건배라도 하자는 듯 들어 올렸다. 그도 따라 웃음을 지으며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시작한 술은


한잔 두 잔, 연이어 시켜 세병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느새 가까운 친구처럼 말도 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술병을 들고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옮겼다. 바다 위로 보이는 달빛은 오랫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보지 못했다고, 서로 감탄을 하며 예기했다. 둥근 달빛은 물결 위에 흐느적거리듯 춤을 췄다.


늦은 밤 불어오는 봄바람은 그들 가슴에 스며들어 술처럼 적셔 버렸다. 그녀는 술과 밤바다 바람에 취해 손을 들어 나비 짓을 하듯 춤추는 시늉을 했다. 오랜만에 풀려버려 해방된 몸짓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술잔을 들어 텅 빈 마음을 채우려는 듯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비몽 사몽 취해버린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싫었다. 뭔가 아쉬운지 그녀가 한마디 한다.


"한잔 더 합시다. 내가 오늘 마시려고 산 와인 있거덩... 꺼윽"

그녀는 술이 취한 건지 아니면, 그가 가깝게 느껴서인지 존댓말 반말을 썩어가며 예기했다. 그는 가서 쉬려고 했지만,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호텔방까지 부축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와인병을 꺼내 든다.


"자, 이것 좀 따줘..."

남자는 잠깐 고민했다. 갈까 말까' 하다 그가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주머니 속 맥가이버 칼이 손에 잡혔다. 오래전 선물 받은 스위스 군용 툴에는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와인 오픈너도 있었다. 잠깐 만지작하다 사용하고 싶은 호기심에 이내 코르크 마개에 쑤셔 넣고 있었다.


-'또르르 뚝뚝 뚝뚝'

술에 취해 낑낑거리며 딴 와인을 잔에 듬뿍 따랐다. 그녀에게 잔을 거네며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낯선 곳, 낯선 여자, 하룻밤 정도는 괜찮겠지... 여자 의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건배?", "건배!"

그와 그녀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손을 교차해 마셨다. 달빛에 비친 두 얼굴은 이내 소리 없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룻밤을 같은 침대에서 보냈다.


다음날 해가 쨍쨍하게 떠서야 그가 일어났다. 먼저 일어난 그녀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화장을 하는 동안 그는 지난 밤을 생각하며 잠깐 동안 고민했다. '계속 만나도 될까 아니면, 모르는 체 하룻밤 일로 끝낼까... '그녀는 나름 꽤나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순간 관심에 두던 다른 여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괜한 아쉬운 마음에 연락처라도 알아 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가 화장을 고치려 가방을 뒤지다 뭔가 떨어 뜨린다. 대굴 대굴 굴러와 그의 발을 맞고 멈춘 것은 반지였다. 동시에 목격한 그들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는


"아, 이런 사실 저 결혼했어요. 사실은 어제 말한 친구는 남편이었어요."

"......"

"말할까 하다, 남편한테 바람맞은 게 너무 화가 나서 말 안 했어요."

그녀는 남편과의 일로 배신감을 느껴서인지, 일부러 바람피울 작정을 했는가 보다


'왜? 하필 유부녀야... 그리고 왜 하필 그걸 이제야 말하는데...'

그는 속으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알았더라면 혼자 조용히 쉬다 갈 건데... 베개로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 그는 간다는 말도 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 또한 아무 말 없이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찹찹한 마음과 잡다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보지도 않는 TV를 켜 놓은 채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괜한 짜증인지, 뭔지 모를 죄책감인지 올라와 이불 킥을 하듯 허공에 발을 휘둘렀다. 안고 있던 쿠션을 신경질 내듯 바닥에 집어 던지기도 했다. 남은 하루 동안 온갖 망상에 사로 잡혀 살았다. 왜 하필 그때 그곳에... 그리고, 왜? 그녀가...

그런 와중에 무슨 두개의 마음인지 전날 그녀와 있었던 욕정이 야릇하게 올라왔다.


* * *


그는 몇 주가 지나서야 그녀를 점점 망각하듯 잊어갔다. 그리고 마음에 둔 여자 송수민과도 그럭저럭 관계가 진전되어 갔다. 그렇게 지내는 와중에 함께 일하는 부장이 집으로 초대를 했다. 부장은 꽤나 그를 잘 챙겨 주었다.


"이성곤 과장? 내일 잊지 말라고?"

"넵, 내일 오후 6시"

그는 알고 있었다. 내일 토요일은 그의 딸 생일이라는 것을, 얼마 전 온라인으로 선물을 고민하는 것을 언뜻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방문한 상사 집에는 몇몇 다른 사람도 보였다.


"음, 그래 어서 와!"

부장은 반갑게 그를 맞이해 주었다.


"자, 여기 따님 선물입니다."

"하하 어떻게 알았어?"
"얼마 전 선물 때문에 고민하던걸 보게 됐어요. 헤헤"

"하하하 그래? 오늘은 딸 생일 겸 집들이야. 오랫동안 집들이 같은 걸 못해서... 하하, 얼떨결에 그렇게 됐네."


그가 자리에 앉자 낯익은 여자가 부엌에서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그는 도와주려고 일어서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지난번 호텔에서 만난 여인 나연희였다. 하지만 그의 반응과 달리 그녀는 눈과 입을 동그랗게 뜨며 놀래더니, 이내 한쪽 눈을 감고 윙크를 했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 싶어, 걱정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자기 일과 대화하는데 바빴다.


'아, 왜 하필 여기서 나오는데...'

성곤은 황당한 상황에 말문이 막히고 머릿속은 멍해졌다.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의 딸이 방에서 나오며 그의 다리를 잡았다.


"아저씨? 선물 고마워요!. 엄마? 이거, 이 아저씨가 가져온 거래!?"

"응, 그래? 와! 이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호호호"

성곤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어찌할 줄 모르는 반면, 그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연락처도 안 받고 헤어진 그녀,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왜 하필이면 여기서 그리고 왜? 부장님 와이프냐고'

그는 하나하나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의 직속 부장은 하필 또 그를 지나칠 정도로 잘 챙겨주는 친한 형 같은 사람이었다. 그를 스카우트할 때도 힘써준 사람 중 하나였다.


* * *


그는 그날 맹한 정신으로 가짜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저녁을 보냈다. 2차를 가자는 말도 뿌리친 채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쉽지 않게 얻은 회사는 그를 위해 제공되는 것이 많았다. 탄탄대로 일 것만 같았던 회사 그러나, 그의 상사와 와이프는 그의 마음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는 일보다 마음이 편한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음날 양복 안주머니에 봉투 하나를 넣고 부장에게 찾아갔다. 결심한 듯 말하려고 하는 그 순간, 부장이 냅다 선수 치듯 말을 했다.


"어, 이 과장 잘 왔어."

"......"

"거기 앉아. 차 한잔 하자고"

"... 네?"

"내가 새로 진행할 프로젝트 팀장으로 자네를 추천했어."

"아..."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팀을 이끌어 줘야 하니, 준비해."

"저기?..."

"이번에 일만 잘 처리하면 바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이니까, 잘해보라고."

"아... 네. 고맙습니다!"

"아... 차, 내 말만 했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아... 아뇨, 하하하 그냥 지난번 저녁 잘 먹고 잘 보냈다는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챙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에이... 무슨 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그는 하려던 말은 결국 못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준비했던 사직서는 3번 4번 쫙쫙 찢고는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고민했다. 앞으로 이 난관을 어떻게 피해야 하나...


일그러진 얼굴로 잡다한 생각을 하며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흠모하던 여성이 다가와 안부를 묻는다.


"안녕하세요? 무슨 고민거리라도... 안색이..."

"아, 하하. 아뇨... 그냥 일이 좀 생겼는데... 그것 때문에 고민 잠깐하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아뇨,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돼서요."

"아, 그럼 좋은 일이네요."

"하하, 네... "

"아, 일이 어려운 건가요?"

"아뇨... 그렇지는 않은데..."

"힘들면 말씀하세요. 제가 위로주나 저녁이라도 사드릴게요."

생각지 못했던 그녀의 말은 데이트 신청처럼 들렸다. 그는 순간 그녀의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하, 저야 좋죠! 수민 씨 시간 될 때, 언제라도 시간을 만들어 볼게요."

"호호호, 정말요?"

"네! 그럼요."

그렇게 서로 말한 후 그들은 종종 만나 저녁도 먹고, 주말 데이트도 했다. 서로 애인 하자고 말은 안 했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은 점점 봄 새싹처럼 자라났다.


그가 바라보는 그녀는 어찌나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지 그가 찾고 있던 이상형이다. 한쪽만 살짝 들어가는 보조개에 맑은 눈웃음과 미소는, 그동안 건조하게 살아온 그의 마음을 열기에는 충분했다.

그녀 역시 말은 안 했지만, 그가 우직하게 한눈팔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에 반했었다. 무언가 몰입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그녀 역시 몰입하듯 그에게 빠져 들곤 했다.


그는 그날도 상큼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은 먹먹한 고구마라도 먹힌 듯, 부장 와이프 연희가 떠올라 괴롭히는지... 쓰라린 표정을 감추려 커피를 들이켰다. 감정도 커피에 녹아 있는지 꽤나 쓰다.


그날 그녀와 대화 전 받은 문자가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나 보다. 문자는 생각지 못하고 있던, 연희에게 온 것이었다. 잘 지내냐고' 그리고 번호는 자기 남편 휴대폰에서 찾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잠깐 잠겨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그는 문자를 받고 아무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애써 잊고 피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떠올랐다. 그녀도, 여자 친구도 그리고 부장 얼굴까지... 새로 맡은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은 듯 목표가 희미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여자 친구 송수민이 입원을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많이 놀랐어요."

"별거 아니에요.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났어요. 미안해요. 걱정하게 해서..."

"정말 별거 아닌 거예요? 많이 다친 거 아니죠?"

"예, 괜찮아요. 약 3주 정도만 치료받으면 된데요."

마음속에 들어온 그녀 소식에 많이 놀랬으나, 다행히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말에 안심을 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매일 같이 병문안을 갔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어? 부장님 오셨네요."

"어, 자네도 여기 있었네."

"네!..."

"언니?...."
"수민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아?"

"응,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부장이 들어오고 뒤이어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연희였다. 그녀와 수민은 서로 얼싸안듯이 기뻐했다. 이를 바라보는 성곤은 맹한 표정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부장도 묘하게 굳은 표정이다.


"어머, 여기서 뵙네요?"

"아하하...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네...하하, 잘 지내셨죠?"

"네... 호호호"

"어머, 언니 성곤 씨를 알아?"

"응... 남편이 좋아하는 후배님을 왜 모르겠어... 호호호"

"아... 그럼, 소개 안 해줘도 되겠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로 얼버무리듯 어색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감 잡을 만큼 정도의 소개를 했다. 연희는 수민의 대학교 선배, 부장과 성곤과 수민은 같은 직장. 그들 모두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은 묘한 색으로 드리워졌다.


성곤은 그날 또 충격적인 예기를 들었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성곤을 부장이 한잔하자며 붙잡는다.


"와이프가 말이야. 요즘 통 마음을 닫은 것 같단 말이야. 전 같지가 않아."

"어디 여행이라도 같이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글쎄, 이제 나도 통 마음이 가질 않아서... 지쳤어.

지난번에 자네 예기를 들려주며 사진을 보여줬더니, 옛날 자기 첫사랑이 생각난다나 뭐라나... 하하, 참나."

"......"

"그래서 나도 첫사랑 닮은 사람 있다고 말하려다 말았지..."

"사이가 많이 안 좋으신가 보네요."
"마무라? 이제 지겨워. 오늘 병문안 간 수민이 정도가 나한테는 딱인데... 사실 수민이가 내 첫사랑을 너무 닮았어. ㅋ 내 청춘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

"지금 말은 그냥 술김에 말하는 거니까, 비밀이라고... 내가 요즘 외로워서 그래. ㅋㅋ"

"...... 네."

"둘 다 마음을 안 여니... 바보 같은 나만 괴로운 거지... 하"

"한잔 하시죠?"

"어, 그래. 건배"

"......"

"요즘 프로젝트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 썩 좋아 보이지 않던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면, 내가 좀 지원해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상곤은 부장의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앞에 있는 술잔을 바라보며 빙빙 돌리다가 홀짝홀짝 들이켰다.


"안주 좀 먹어? 저녁도 안 먹었잖아."

"... 네"

"무슨 일 있어. 오늘 영 표정이 안 좋네."

"그냥 피곤해서요."

성곤은 술김에 확 털어놓자니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것 같고, 괜한 화를 내자니 그동안 챙겨준 부장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이제와 하던 프로젝트 때려치우고 그만두겠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건성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내용을 듣고 있자니, 성곤이 주말여행을 했을 때, 부장과 수민이 안 좋았던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일로 인해 연희와 약속이 깨지게 되었는가 보다. 그리고 그날 연희는 성곤이 부장과 잠깐 통화 중에 여행 이야기를 듣고 같은 곳으로 떠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곤은 잡다한 생각에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졌다.


부장과 헤어지고 성곤은 집에 돌아와 다시 고민했다. 수민에게 무슨 상황인지 따져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은 수민에게만 솔직하게 털어놓고도 싶었다. 수민을 만나기 전 모르고 한 실수였다고... 그렇게 고민만 하면서 보내던 어느 날 부장이 커피 한잔 하잔다.


"나, 다음 달 발령 날 것 같아."

"예?"

"여기가 지긋지긋해서 바람 좀 쐬고 싶기도 하고..."

"무슨 말씀이신지?"

"해외 주재원 발령 나서, 곧 나갈 것 같아."

"다녀오시면, 경력이나 경험에 도움 될 것 같은데요."

"고민이야, 혼자 갈지, 가족 모두 갈지..."

"다 같이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성곤은 말은 못 했지만, 내심 고민거리가 해결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아내하고 사이가 안 좋거든."

"그래도, 같이 가셔서 새로운 곳에 정착하다 보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는 게 나을까?"

"예, 제 생각에는 다 같이 가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요."

"......"

"혼자 가시면 많이 외로우실 텐데, 그리고 낯선 곳에 아는 사람도 없으시니..."

여러 의견을 듣고 있던 부장은 성곤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당장 사이가 좋지 않은 와이프와의 관계가 새로운 곳에 정착하면서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이곳을 떠나면 후련해질 것도 같았다.


얼마 후 부장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의 부인 나연희는 성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 따라가기로 했어요. 그리울 것 같은데... 추억은 간직할게요.']

메시지를 본 성곤은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었다. 만약에 남편이 보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따라간다는 말에 안심하는 눈치다.


그 후로 관계라도 정리된 듯 성곤은 다시 송수민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가 성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꽤나 인기가 좋은 그녀는 가끔 직장 동료들이 추근대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그와 비슷한 일로 다툰 적도 있었다. 성곤은 다시 그 일이 생각나 답답했다. 추궁을 할 수도, 그렇다고 왜 그러냐고 자꾸 귀찮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끔은 그녀 선배인 연희가 무슨 예기라도 한건 아닌지 설마하며 걱정이 하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수민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언제 시간 나면 만나요.']

메시지를 보자 성곤은 내심 기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걱정도 올라왔다. 한동안 그녀가 먼저 만나자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 연희에 대해 솔직이 얘기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그러는지 진지하게 물어볼 작정이다.


"잘 지내지?"

"응, 그럭저럭."

그들은 서먹한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이전에 가까워진 탓으로 말은 편하게 했다.


"별일 없지?"

"사실은 별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

"... 무, 무슨?"

"나, 사실... 그동안 숨기고 있던 게 있었어."

'...... 설마?' 성곤은 연회와 부장에 대해 내심 걱정했다.


"얼마 전 교통사고 후유증인 줄 알고 병원에 갔었는데... 얼마 못 산데."

"그게 무슨 소리야?"

"으으으으... 으으으응..."

그녀는 말을 잊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낮은 소리로 서글프게 울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그는, 하려고 했던 말은 침묵 속에 묻어 버렸다


"나 이제 더 이상 오빠 못 만나... 아니 더 이상 볼 수 없어."

"얼마 못 산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서... 그래서... 날 잊어 줬으면 좋겠어. 아니 내가 잊고 싶었어. 다 모두 다 떠나 버리고 싶어."

"......"

"그런데, 안돼..."

"말해봐 무슨 예긴지?"

"왜? 이해가 안가? 나 곧 죽어야 한대. 불치병이래."

"......!."

"흐흐흐흐 흑흑흑"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녀 가까이 다가가 안아 주었다.


"오빠?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줘."

"....."

그날 밤 그는 수민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하고 호텔에서 함께 묶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헤어졌다. 그 후 더 이상 수민은 문자만 확인할 뿐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회사마저 그만두었다. 그녀를 설득이라도 하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으나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자포자기하듯 지내던 어느 날. 연희에게 문자가 왔다. 그리고 같은 날 수민에게도 왔다


-['이혼하기로 했어요. 우리 가끔 연락해요.']

-['우리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문득 지독하게 외롭고 가난했던 옛 시절을 회상했다. 잠깐 고민하다 두 여인에게 같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


[중략]


sticker sticker



PS: 여러 중/장편 소설 구성하다, 부족하지만 단편으로 압축해 써 봤습니다.

+ 괜찮으셨다면, 좋아요와 구독은 글쓰기 에너지입니다. 고맙습니다! ^^;


* 양가감정: 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에서 오는 혼란스러운 감정. 어떤 대상, 사람, 생각 따위에 대하여 동시에 대조적인 감정을 지니거나,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따위이다. [출처: 네이버 사전]




이전 11화거울에 갇힌 영혼과 eGo의 저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