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소설
낯선 여자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어라 뭐지... 왜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거지'
순간 어색하고 멋쩍어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 * *
낯선 여자를 만나던 날, 가본 적 없던 낯선 곳의 낯선 장소였다.
허구한 날 집구석과 회사에서만 지내는 것 같아, 오랜만에 발길 닫는 대로 떠났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남쪽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의외로 고품격 서양식 술집(바)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옆에는 모텔도 있었다.
하룻밤 모텔에서 묵고 쉴겸 차를 세우고, 바로 술집으로 향했다. 바텐더에게 적당히 고급스러운 위스키 언더락을 시켰다. 흘러나오는 재즈 흐름에 맞춰 컵 속의 얼음을 뱅글뱅글 돌리다 한 모금 머금었다. 씁쓸한 갈색 술 맛이 혀로 느꼈졌다. 이윽고 식도를 따라 찌리리 내려가고, 위에서 퍼져나가 뇌를 터치해 멜랑꼴리 기분도 음미했다.
세 번째 잔을 마실 때쯤 밀려오는 방광의 압박감으로 화장실을 찾아 몸을 일으켰다. 재즈 멜로디에 몸뚱이를 맞춘 채 흐느적거리며 화장실 문을 열고, 동시에 지퍼도 열어 재키며 소변기로 걸어가 정조준 후 시원스럽게 갈겼다. 아랫도리 밖으로 흘러나간 오줌은 술이라도 빠져나갔는지, 이내 술이 고파 앉자마자 남은 술을 들이켰다.
"여기요..."
한잔 더 시키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를 보는 기운이 느껴진다.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한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다. 외국이라면 눈인사라도 나눌지도 모를 일이지만, 한국 문화 특성상 또는 개인 성격상 멋쩍어 고개를 먼저 돌렸다. 그리고는 바텐더를 향해 술을 주문했다.
"같은 걸로 한잔 더요."
"네~"
주문을 하고는 생각했다.
'왜? 나를 보고 있는 거지?'
애매한 미소를 띤 체 보고 있었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싶어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반 비스듬히 이쪽을 향해 있었다. 여전히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힐끔거리기가 쉽지 않았다.
주문한 술이 나올때 순간을 포착해 머리는 바텐더를 향하고 눈알은 짧게 돌려 그녀를 보았다. 아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초저녁 술집은 이미 어둠이 내려 희미한 불빛만 에로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설프게 보인 그녀는 꽤나 미인이었다. 큰 눈에 쌍꺼풀과 연분홍빛 입술 옆 아래에 작은 점은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웃는다면 보조개라도 있을법 했다. 반면 표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꽤나 도도해 보였고, 어딘가 모르게 싸늘한 느낌까지 들었다.
'모르는 사람 같은데, 왜 그렇게 나를 보고 있는 거지...'
생각이 정답이라도 찾고 싶다는 듯, 여러 가지를 떠올려 주었다.
'나는 모르지만 그녀는 나를 아는 걸까?', '아니면, 날 유혹이라도 하려는 걸까', '또 아니면, 나에게 관심이라도 있는 걸까... 뭐 사실 괜찮게 생기긴 했지만... ㅋㅋ', '혹시, 사시(사팔뜨기)일까...'
여러 생각이 오르내리다 마지막 생각이 나를 과거 학창 시절로 인도했다.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같은 반을 했었던 동창이 있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가 사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그를 기억하는 뚜렷한 한 가지 기억은 사시라는 이유만으로 학교 일진한테 맞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때의 상황은 이러했다.
"뭘 꼬나봐 이 새끼야"
"......"
"어라, 눈 안 깔어."
"..."
"이 씹쎄봐라... 너 이리 와바"
일진 중 대빵이었던 놈은 주변 무리에게 자존심이라도 지켜야 했는지 바로 행동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 동창은 주먹과 발길질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먼발치에서 보던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막상 그가 사시라고 말하려 했으나, 듣는 그 동창에게도 못할 말 같아서 머뭇거렸다. 그런 와중에 더 가깝게 있던 일진 중, 한 오지랍퍼가 나서서 대 놓고 이야기했다.
"야, 저 새끼 사팔뜨기야. 그만해"
그 말은 들은 대빵은 오해가 풀린 건지 분이 풀린 건지, 하던 행동을 멈추고 한마디 했다.
"야, 꺼져."
* *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그녀가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마지막 칵테일였는지 홀짝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격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나가려고 했다.
'어어, 이대로 가면 안되는데... 왜 그렇게 나를 보고 웃었는지 알려주고는 가야 할 거 아냐'라고 소리 없는 마음이 외치고 있었지만, 딱히 물어볼 용기도 바꿔 말할 껀덕지도 없었다. 나가기 전에 대뜸 '너 누구야 또는 왜 그렇게 봤는데...' 물어볼수도 없는 노릇였다.
관심이 있다면 남자인 내가 눈치를 채고 접근했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생각에 생각이 오고 가는 동안 이미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마음이 문쪽을 향하자 몸이 순간 들썩여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멍하니 문밖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괴상한 아쉬움은 왜 드는 건지 모른 체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있었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뭔가 떨어져 있었다. 이유 없이 몸이 그곳을 향해 갔다. 작은 종이는 명함이었다.
'왜? 이걸 두고 간 거지...' 하는 생각과 함께 명함을 자세히 보았다.
순간 눈을 의심하듯 눈꺼풀을 문지르곤 다시 보았다. 명함 속 사진에 내가 있었다. 아니, 신기할 정도로 나와 닮았다. 왜 내가... 아니, 이건 도플갱어(닮은꼴)... 명함에 보이는 사진은 내가 아니었다. 사진 속 헤어스타일도 해본 적도 없어니와, 주소나 이름, 전화번호도 전혀 달랐다.
'아... 이것 때문에 그녀가 나를 그렇게 바라본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녀보다 나를 닮은 그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녀는 머릿속에 사라지고 전혀 만나보지 못한 명함 속 사진이 주인공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술김에 떠오르는 호기심은 전화번호를 이리 보고 저리보고 기억날만한 번호를 조합해 보기도 했다. 혹시 나 몰래 떨어지게 된 쌍둥이라도 있는 걸까...라는 생각까지도 왔다 갔다.
수많은 생각과 상상이 난무하다 다시 그녀의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이 사람과 무슨 관계일까... 그리고 그가 나라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많은 의문과 질문은 3박 4일 동안 따라 다니다가 잊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후로 간혹 무료하다 싶으면 심심풀이 땅콩처럼 떠오르곤 했다.
'전화라도 한번 해봐... 그곳에 가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진 않은 체 그렇게 가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