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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여전사 Sep 02. 2021

엄마의 보호자가 됐다

우리의 역할이 바뀌던 날

엄마, 혹이 더 커진 것 같아


엄마의 목에 혹이 생겼다.

주말마다 엄마 목에 혹을 보았다.

처음에는 사과 씨앗만 했고

한 주 후에는 복숭아 씨앗만 하다가

또 한 주 후에는 애기 주먹만 해졌다.


처음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나는 동네 병원 가봐하고 말았는데,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라 했다. 엄마는 큰 병원에 혼자 갔다 왔다 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저게 뭘까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식탁이 좁았나, 식탁이 아예 없었나. 엄마와 나는 밥상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손을 뻗어 엄마의 혹을 만졌다. 그 질감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서운 기분은 단단하게 몰려왔다.


“병원 언제 간다고? 같이 가자”


무슨 촉이었는지 꼭 병원에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연차를 내고 엄마를 따랐다.


뭔지 모르겠네요. 수술해봐야겠습니다.

의사는 날짜를 잡자고 했고, 엄마는 달력을 봤다.

“근데 수술하면 이 혹을 떼는 건가요? 흉터는요?”

“목에 남죠. 이 정도? 이렇게 남습니다.”

의사는 엄지와 검지를 들어 엄마 목의 반 정도를 잡았다. 저렇게나 많이 남는다고? 엄마도 여잔데? 저렇게 잘 보이게??


“생각 좀 해볼게요.”

나는 엄마를 모시고 나왔다.


“그냥 빨리 수술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엄마 목에 그렇게 큰 상처가 생기는데?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같이 오지 않았더라면 덥석 수술 예약을 잡고 나에게 통보했겠다 싶어 아찔한 마음까지 들었다.


어학연수 중 어느 날 엄마는 지금 수술에 들어간다며 전화를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모두 외국에 있었다. 내가 걱정할까 봐 끝까지 속이려 했던 엄마는, 막상 수술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자, 혹시라도 잘못돼서 내 목소리를 영영 못 들을까 봐 전화했다고 했다. 어디가 아픈데? 자궁 수술을 해야 해. 엄마는 그렇게 나와 내 동생을 품었던 자궁을 떼어냈다.


아르바이트와 공모전 상금으로 모은 돈만 들고 혈혈단신 외국으로 떠나 버린 나를 엄마는 깡도 좋다고 했다. 겁도 없고, 혼자서도 잘한다고. 그게 다 엄마를 닮아서 아닌가. 나에게 비밀로 하고 그렇게 큰 수술을?


걱정하고 고민했지만 엄마의 병에 대해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엄마가 알아서 잘했겠지. 엄마가 알아서 잘 헤쳐나가겠지.


불과 4년 차이였는데 나는 어느새 엄마의 보호를 받던 사람에서,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모든 병원에 전화하고 가장 빠른 예약을 했다.


엄마 여기 잠깐만 앉아 있어

엄마를 병원 복도 의자에 앉히고, 나는 난생처음 가 본 대학 병원에서 엄마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CD가 사용되는 곳이 아직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지 아마.


“끝났다 엄마. 내일 이거 들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면 돼. 내일은 내가 못 가니까, 엄마 친구 한 명 모시고 다녀와. 아이고 우리 엄마 수고했네. 우리 백화점 가자”


병원 진료를 끝낸 자식에게 대견하다는 듯 장난감을 사주는 부모처럼. 나는 엄마에게 예쁜 옷을 사줬다.


다른 병원을 예약하고, 진단 기록을 떼러 병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 순간부터,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엄마 손을 잡은 내가 엄마 뒤에서 졸졸 쫓아가던 적이 있었겠지. 엄마가 여기 잠깐 앉아있으라고 한 적이 있었겠지. 엄마가 우리 딸 대견하다고 장난감을 사준 적이 있었겠지. 엄마가 나를 위로했겠지. 엄마가 나를 보호했겠지.


이제 우리는 위치를 바꾼다. 내가 앞서 걷는다. 만난 지 스물 다섯 해를 지나,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바꿨다.


나는 그날부터, 우리 엄마의 보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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