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살면서 이사를 세 번 했습니다. 갓난 아기 때, 여섯 살 때, 그리고 한 달 전입니다. 갓난 아기 때와 여섯 살 때는 기억이 없어요. 이사에 관한 기억이 없어서, 이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인테리어 업체 고르는 일부터 가구 사는 일까지 신경 쓸 일이 많더군요. 이사 비용이 크다 보니 하나하나 다 따져가면서 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인테리어는 이랬습니다. 저는 단지와 제휴한 업체를 부르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버지는 비용을 다 계산하고 결정하셨어요. 단지와 제휴한 업체는 바닥, 도배, 전기를 모두 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비용을 계산했을 때 바닥하는 업체, 도배하는 업체, 전기하는 업체를 따로 부르면 비용이 더 저렴했어요. 특히 전기 쪽은 더 전문적인 업체가 믿음이 가기도 했어요. 그래서 여러 업체를 고르고 골라서 다 따로 불렀습니다.
부른다고 끝이 아니였어요. 서로 다른 업체 분들이어서 일정 조율을 저희가 해야 했어요. 장판 작업과 도배 작업을 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요. 작업이 잘 되고 있는 지도 신경 써야 하고, 기간 내에 끝내 달라고 계속 말해야하니까 상당히 힘들었어요.
이런 일은 아버지가 맡으셔서 아버지가 더 힘드셨을 거예요. 사실 저는 가구 사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저는 자기 가구는 자기가 알아서 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같이 가서 꼼꼼이 살피길 원하셨어요. 그래서 주말마다 가족 모두가 가구를 보러 갔어요. 가구를 보러 다닌지 3주 째 아버지한테 짜증을 냈습니다. '각자 쓸 가구까지 같이 보러 다닐 필요가 있냐, 따로따로 결정해서 확인 받는게 훨씬 효율적이다'고 했습니다. 제 방 가구는 다 골랐기 때문에 가서 할 일도 없었어요. '내가 가서 뭐하냐'고도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 말대로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맞아. 그런데 가족은 효율만 따져서 사는게 아니야. 너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 옆에 있어주는 게 너의 할 일이야."
저는 그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마치고 2주 째에 할머니가 직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할머니가 검사를 하신 건 알았지만, 큰일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가족 전체가 당황했습니다. 먼저 할머니를 저희 집으로 모셨습니다. 할머니가 해남에 사셔서 서울로 모셔야 했어요. 옛날에 살던 집은 엘리베이터도 없고, 크기도 작아서 할머니를 모시기 곤란했는데 이사 타이밍이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어요.
할머니가 생활은 정상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정밀 검진 하시는 동안, 처음으로 할머니랑 오래동안 같이 지냈습니다. 할머니 식사 챙겨드리는 일이 처음이었어요. 항상 할머니 댁에 찾아가면 식사를 차려주셨거든요. 할머니가 도시 생활을 안해보셔서 많이 도와드려야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수술 받으시고 입원하셨을 때 옆에 있어 드리고, 성경 읽어 드리고 하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됐어요. 다행히 암이 1기여서 큰일 없이 지금은 집에서 회복하고 계세요. 당분간 할머니와 같이 생활하면서 추억을 쌓을 예정입니다.
그냥 - 가족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