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신뢰
D형이 저를 아끼는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신앙에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D형은 확신의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대형 교회 청년부 리더일 정도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D형이 착했던 이유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임들에게 잘 해줬던 것도, 간식을 자주 사줬던 것도, 100%가 아니라 120%까지 모범을 보였던 것도, 모두 그랬습니다.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요. 이게 문제였습니다. 100%를 120%로 하는 것이 말입니다.
'선민 의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선민 의식은 이스라엘에 대한 말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이야기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입니다. 선택 받은 민족이 선민입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믿습니다.
나 여호와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거룩하여라.
이것은 내가 많은 민족 가운데서 특별히 너희를 구별하여 내 백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레위기 20:26
여기서 말하는 '구별'은 '거룩'과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레위기 20:7
교회에서 그렇게 외치는 '거룩'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구별된 삶입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에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모세'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바탕으로 세운 것이죠.
'우리는 다른 민족과 다르게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이야. 그래서 다르게 살아야 해!'
라는 생각이 바탕인 규칙입니다. 이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으로 살아갔습니다.
만일 너희가 내 법에 따라 살고 내 명령에 순종하면
너희와 함께하여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레위기 26:3,12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구별이 차별이 되어 버렸습니다. 본래 구별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너희를 구별하였으니, 거룩하게 살아라'는 말씀을 '내가 구별되게 살면 거룩해진다'고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구별의 주체가 자신이 되었기 때문에, 율법에 '전통'이라는 자신의 기준을 덧붙입니다. 심지어 그 기준을 남들에게 가져다 대고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구별이 차별이 되는 것입니다.
*정죄: 죄인으로 규정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왜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 온 전통을 깨뜨리고 있습니까?
그들은 식사할 때 손을 씻지 않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왜 너희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마태복음 15:1-3
예수님은 율법과 전통으로 타인을 정죄하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율법학자라도 태어나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도 태어나서 아무런 잘못 없이 살아가십니까? 사람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서슴없이 위선자라고 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바로 너희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잘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내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마태복음 15:7-9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다윗이 자기 일행과 함께 배가 고팠을 때 한 일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 규정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마태복음 12:1-3,5,7,34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일어나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엇인가 계속 쓰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둘씩 모두 가 버리고 예수님과 거기에 서 있는 여자만 남았다.
요한복음 8:3-9
예수님은 돌로 쳐 죽이자는 사람들의 죄를 땅바닥에 하나 하나 쓰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짓고 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너는 뭐가 다르냐'고 하신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덧붙인 잣대를 모두 제거하십니다.
"이제 내가 새로운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3:34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다. 그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계명이다.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마태복음 22:37-40
저는 D형이 했던 그 120%를 존경합니다. 그래서 같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D형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신이 덧붙인 그 20%를 들이댈 때, 그 20%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전통과 잣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D형과 제가 상병일 때는 이런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코업코야. 왜 애들은 열심히 안할까? 내가 어디까지 해줘야 돼?"
"D상병님. 애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게 열심히 하는 거라고?"
"D상병님의 기준은 너무 높습니다. 그리고 D상병님이 안 하면 애들이 합니다."
"난 애들이 하는 걸 못봤어."
"D상병님이 먼저 나서지 마십쇼. 나서지 말라고 해도 나서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이제는 지시를 내려야 할 분이 그러고 있으면 애들이 당연히 벙찌는 겁니다."
"하..."
"애들을 좀 믿어주십쇼."
이 때까지는 D형이 혼자 힘들어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D형이 분대장이 되고서는 안 하던 집합을 시키고 자기가 만만하냐면서 애들을 다그치는 겁니다. 그래서 D형과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D병장님. 애들이 부족해도 있는 그대로 봐주시면 안됩니까?"
"있는 그대로... 그게 맞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근데 상대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줘야 할까? 그걸 고쳐 주는 게 정말로 상대를 위한 것 아니야?"
"잘못 말입니까? 애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D병장님도 하나님 앞에 똑같은 죄인 아닙니까?"
"..."
"D병장님이 지금까지 열심히 해오신 거 알겠습니다. 저 D병장님 좋아합니다. 근데 D병장님이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완벽하지 않다는 거, 본인이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중대에 일하는 사람이 나하고 너 그리고 네 동기 밖에 없는 게 맞는거야?"
"D병장님.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 다 전역했습니다. D병장님이 인정하고, 일 잘하던 선임 분대장들 다 전역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부대 안 돌아갔습니까? 지금 우리 부대 안 돌아갑니까? D병장님이 일 안해도 부대 잘 돌아갑니다. 아무도 D병장님한테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
"전 솔직히 요즘 D병장님의 모습이 바리새인 같습니다."
"뭐?"
"진짜로 많이 고민하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저도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는게 맞는지 헷갈리는데, 그래도 말씀 드리는 겁니다."
"..."
"전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애들한테 기대도 안합니다. 기대 없이 있는 그대로 보면, 애들 지금 잘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 말이 제 실수였습니다. D형은 이후로 애들을 믿지 않겠다며, 더 억척스럽게 변했습니다. 저는 그 즈음에 보직이 중대 행정병으로 바뀌어서 더이상 같이 작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D형이 하는 일에 더 참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D형이 전역하고 제가 전역할 때까지 부대는 잘 돌아갔습니다. 수차가 돌아가듯이 잘 돌아갔습니다.
수차는 잘 돌아간다 - 착한 선임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