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의는 재능기부로 하고 있습니다.
수강을 희망하시는 분들께서는 부담없이 댓글 달아주시면 단톡방으로 초대하겠습니다^^)
-<다음은 소설 기초반 커리큘럼입니다.>-
1주차: 나는 누구인가
2주차: 사진 보고 자세히 쓰기 묘사(설명하지 말고 보여주기)
3주차: 필사하면서 하는 문장 강화 훈련
4주차: 감각 자극 글쓰기 (냄새, 소리, 색을 넣어서 문장 완성하기)
5주차: 짧게 쓰기의 힘(간결하게 글쓰기)
6주차: 길게 이어 쓰기
7주차: 대화를 넣어 쓰기(독자를 장면 속으로)
8주차: 도입부 문장의 중요성- 강렬한 첫문장으로 독자를 홀려라!
9주차: 비유와 은유 넣어 글쓰기 - "처럼", "마치" 활용
10주차: 계절/날씨로 분위기 만들기
11주차: 음식 이야기 - 오감 총동원해서 글쓰기
12주차: 1학기 마무리 - 자유 주제 작문 (1,500자 이내)
‘필사’란 베껴쓰기를 말합니다. ‘손으로 책 읽기’라고도 하며 ‘가장 속도가 느린 독서법’이라고 합니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는 ‘필사란 책을 되새김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눈으로 읽고 지나가는 것보다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쓰는 행위가 책의 저자와 가장 깊이 교감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작품을 일일이 필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필사를 권하는 이유는, 그 작품을 모방하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필사는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인물의 태도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의 능력까지도 물려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깊은 사색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작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공들여 읽고 인내하며 쓴 시간과 고통을 감수하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인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고 문제의 답을 줍니다.
음악의 신동 모짜르트는 분명 천재였지만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그의 곡들이 오직 영감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대의 음악 대가의 악보를 수없이 필사하고 나서 얻은 결과물이었죠.
필사는 한 자 한 자 눌러쓰기에 시간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몸에 새긴 기억은 오래 지속됩니다.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됩니다. 필자도 필사를 많이 했지만, 글쓰는 작가들은 필사를 즐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신경숙도 스스로 필사를 통해 실력을 키웠음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좋아하는 책이나 작가의 글을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따라 적었다고 합니다.
소설가 신경숙은 대학 다닐 때, 소설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방황을 했다합니다. 앞이 캄캄하고 도무지 소설이라는 장르가 너무 모호하고 불투명해서 자신은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좌절을 겪었다합니다.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간 그녀는 오정희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몇권의 필사를 마치고 난 뒤, 드디어 소설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가닥을 잡을 수 있었고, 선명하게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합니다. 신경숙은 오정희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대신 체험하고 영혼의 힘으로 작가의 능력을 빨아들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필사는 그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어 자신의 작품에 도용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배끼어 자신의 작품에 도용하는 것은 도둑질이고 불법입니다. 그 작품을 필사하면서 그 작품의 문장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의 구조와 인물의 움직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고스란히 느끼라는 말입니다. 작가 지망생들 또한 필사라는 관문을 통해 글 쓰는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필사에는 부분 필사와 통 필사가 있습니다. 한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쓰는 것은 통 필사이고, 중요하거나 감동적인 문장을 부분적으로 베껴쓰는 것은 부분 필사입니다. 한권의 책을 통으로 필사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동시에 작가의 사고력, 상상력 등의 능력까지 베껴쓰는 행위입니다. 한 권을 필사로 얻은 능력이나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얻은 지식이나 깨달음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수십 권의 책을 읽든 한 권을 통 필사하든 개인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부분 필사는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중요한 문장이나 깨달음을 얻은 문장을 부분만 옮겨 씀으로써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어 효율성이 뛰어납니다.
책 읽기가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필사는 생각을 정리하고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필사를 하면 글쓰기 능력을 키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또한 행간에 담긴 뜻을 찾아내고 본질을 들여다보는 안목이 생겨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한 번, 베껴쓰면서 또 한 번, 필사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훑어보며 자연스럽게 반복적인 독서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고,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여 그 심경을 이해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문장의 완성도, 문단 구조, 기승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출간된 책들의 경우 오랜 시간 그리고 여러 번의 퇴고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맞춤법 역시 여러 단계에 걸려 교정 작업을 받게 됩니다. 필사를 계속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올바른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옮겨 쓰는 작업을 통해 다시 한 번 머리와 가슴에 새겨집니다. 멋진 문체와 표현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어느 부분에서 호흡을 주는지, 혹은 한 호흡에 써 내려간 문체는 어떤 느낌을 주는지, 글쓰기의 감각을 익히는데 최고의 효과를 보이는 것이 필사입니다.
아래 글을 보고 그대로 필사하시면 됩니다. 다만 필사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노트에 한자한자 써도 좋고, 자판에 입력해도 좋습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한자 보고 쓰고 한자 보고 쓰고 하지 마시고, 가능하면 한 문장을 외워서 써주시면 좋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문장을 외워서 쓰면 필력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긴 문장일 때는 반으로 나눠 외워서 쓰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문장들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필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장들은 시간에 구애없이 필사하셔도 됩니다. 쓰다가 1시간이 못되어 끝나거나, 1시간이 넘게 걸렸어도 개의치 말고 쓰세요. 문장을 음미하듯, 빨아들이듯, 한 문장 한 문장 외워서 쓰시기 바랍니다. 문장이 길 때는 문장을 나누어 외운 뒤에 쓰시면 됩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속으로 불려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저무는 해가 마지막 노을에 반짝이던 물비늘을 걷어가면 바다는 캄캄하게 어두워갔고, 밀물로 달려들어 해안 단애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어둠 속에서 뒤채였다. 시선은 어둠의 절벽 앞에서 꺾여지고, 목축으로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너머 캄캄한 물마루 쪽 바다로부터 산더미 같은 총포와 창검으로 무장한 적의 함대는 또다시 날개를 펼치고 몰려온다. 나는 적의 적의(敵意)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적 또한 내 적의의 떨림과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나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이 있고 함대는 없다.
나는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서울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내가 받은 문초의 내용은 무의미했다. 위관들의 심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헛것을 쫓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가 가엾었다. 그들은 헛것을 정밀하게 짜 맞추어 충(忠)과 의(義)의 구조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의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 형틀에 묶여서 나는 허깨비를 마주 대하고 있었다. 내 몸을 으깨는 헛것들의 매는 뼈가 깨어지듯이 아프고 깊었다. 나는 헛것의 무내용함과 눈앞에 절벽을 몰아세우는 매의 고통 사이에서 여러 번 실신했다. 나는 출옥 직후 남대문 밖 여염에 머물렀다. 영의전 대사헌 판부사들이 나를 위문하는 종을 보내왔다. 내가 중죄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종들은 다만 얼굴만 보이고 돌아갔다.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장독(杖毒)으로 쑤시는 허리를 시골 아전들의 행랑방 구들에 지져가며 남쪽으로 내려와 한달 만에 순천 권률 도원수부에 당도했다. 내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시작이었다.
한산, 거제, 고성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에는 꽃핀 숲의 향기 속에 인육이 썩어가는 고린내가 스며 있었다. 축축한 숲의 향기를 실은 해풍의 끝자락에서 송장 썩는 고린내가 피어올랐고, 고린내가 밀려가는 바람의 꼬리에 포개져서 섬의 꽃향기가 실려왔다. 경상 해안은 목이 잘리거나 코가 잘린 시체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