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초 6강, 간결하게 글쓰기 숙제
엄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의 다리는 깁스를 한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머드로 이 먼 곳까장 왔냐. 나 이런 꼴 볼라고 그 먼 디서…….”
마른 풀잎처럼 퍼석하게 누워있던 엄마는 나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메마른 손이었다. 엄마에게도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시절이 있었을까. 엄마의 젊은 날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깡마르고 까칠한 손은 검버섯으로 얼룩져 있었다.
엄마는 누워있으면서도 장독대 걱정을 했다. 날마다 장독대를 닦던 엄마는 손길이 가지 않아 먼지가 끼었을 장독대를 걱정하는 것이다.
“엄마, 지금 장독대 걱정할 때야?”
나는 엄마에게 퉁을 줬다.
엄마는 유난히 장독대에 정성을 들였다. 어찌 보면 장독대를 섬겼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집 장독대는 항상 청결했고 반들반들 윤이 났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장독대가 음식의 저장 창고였다. 고추장이나 된장 항아리에는 생고기도 들어가고 무나 오이도 들어갔다. 때로는 깻잎이나 콩잎, 참외나 떫은 감도 들어갔다. 갑자기 손님이 올 때 엄마는 그 속에 들어있는 고기를 꺼내 고깃국을 끓여내곤 했다.
장독대는 보물창고이자 요술창고였다. 우리들은 어디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엄마는 그 속에서 무궁무진한 찬거리들을 저장하고 있었다. 입맛을 잃을 때쯤이면 장독 항아리에서 꺼낸 오이장아찌나 떫은 감을 물에 담가 짠물을 뺀 다음 잘게 썰어 참기름에 무쳤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떫은 감도 보물창고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쫄깃하면서도 아삭한 맛으로 변해 미각을 돋워주곤 했다.
엄마는 식사 준비를 하기 전에 마치 의식처럼 수건을 머리에 두른 후 앞치마를 허리에 동여맸다. 가마솥에 밥을 안치고, 부엌 안을 오가며 저녁 준비를 하는 엄마의 눈빛은 항상 진지했고 반짝거렸다. 엄마의 칼끝은 기분 좋은 장단을 두드리듯이 경쾌한 리듬을 탔다. 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는 엄마의 손놀림은 노련했다. 엄마는 유난히 시래깃국을 잘 끓였는데 유난히 구수하고 감칠맛이 났다. 잘 삶아 낸 시래기를 꼭 짜서 된장과 참기름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그런 다음 냄비에 참기름을 약간 두르고 볶는다. 거기에 뽀얀 쌀뜨물을 붓고 끓이면 구수하고 고소한 엄마표 시래깃국이 된다. 나는 지금도 엄마표 시래깃국을 기억하며 해보지만, 엄마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가마솥에서 김이 올라오며 밥이 끓으면 엄마는 계란 다섯 알을 깨서 새우젓 넣고 휘저어 항상 밥 위에 쪄냈다. 식구들이 많아서 계란 다섯 알로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지만 그래도 날마다 올라오는 단골 음식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맛이 또 있다. 나는 아무리 해도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엄마는 봄이 되면 정어리에 생고사리를 얹어 정어리찜이나 조기를 넣고 조기찜을 자주 해주곤 했다. 깨끗이 손질한 정어리를 한켜 놓고 그 위에 생고사리를 얹는다. 그 위에 정어리 한켜 놓고 생고사리를 수북이 얹는다. 그런 다음 갖은양념을 그 위에 뿌리고 서서히 졸이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표 정어리 고사리찜이 된다. 우리 식구들은 봄마다 그 고사리 넣은 찜을 그리워했고, 엄마는 연례행사처럼 솜씨를 발휘하곤 했다. 정어리가 없을 때면 생조기에 생고사리를 넣고 조기찜을 해주었는데, 지금도 엄마의 손맛을 재현해 낼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세월이 흘러도 엄마의 손맛이 잊히지 않는 건 엄마의 사랑이 내 몸속 세포 구석구석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들이마시듯 시래깃국을 들이마셨고, 오독오독하게 씹히던 오이장아찌의 식감을 오래 음미하곤 했다. 자식들에게 충만하고 따뜻한 행복감을 주었던 엄마. 우리 형제들은 그렇게 엄마의 음식을 먹고 키가 컸고, 몸속 장기들이 자라났다.
기름진 땅에 뿌리를 내리고 돋아나온 엄마의 나무는 세월의 풍랑 속을 버티며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터트리며 열매를 맺었다. 우리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엄마라는 땅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쭉쭉 빨아들이기만 했다. 지금의 나라면 엄마처럼 그렇게 자식들에게 할 수 있었을까? 나 같으면 피곤하다고, 나 좀 알아달라고, 징징거리며 아이들을 힘들게 했을 텐데.
이제는 더 이상 엄마의 손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언저리는 언뜻언뜻 먼 하늘가에 머물곤 한다. 주방 창밖으로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새는 곧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 인생도 저렇게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