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 여행 글쓰기

여행지에서 느낀 오감 활용하기

by 정윤

여행에 대한 글을 쓸 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합니다.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며칠을 머물렀는지 다 쓰려고 합니다. 하지만 소설과 에세이에서 여행은 기록이 아니라 순간입니다.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은 대개 하나의 장면으로 남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여행 전체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여행 전체’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습니다.
여행지에서의 단 하나의 장면만을 붙잡아 글로 옮겨봅니다.


<오늘의 글쓰기 미션>

주제: 여행지에서의 한 장면

범위: 해외든 국내든, 멀리든 가까이든
하룻밤 여행도, 한 달 여행도 가능합니다.

- 지금까지 가본 곳 중 기억에 남는 장소 3곳을 떠올립니다.

- 그중 한 곳에서 있었던 특정 순간 하나를 고릅니다.

- 그 순간만 깊게 씁니다.


여행 에세이 vs 여행 일기

여행 글을 쓸 때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은, 글이 ‘에세이’가 아니라 ‘일기’가 되는 것입니다.

* 쓰지 말아야 할 것: 첫날 공항 도착, 호텔 체크인/ 둘째 날 시내 관광…

✅ 여행 에세이
여행 중 단 한 장면에 오래 머무는 글을 씁니다. 여행 에세이는 많은 날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 하나를 늘려 씁니다.


‘한 장면’이란 무엇일까요?

- 30분에서 2시간 이내의 짧은 시간

- 특정 장소에서 일어난 일

- 이동보다는 ‘멈춤’에 가까운 순간


예를 들면 이런 장면입니다.

-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던 시간

- 해변에 혼자 남아 있던 해 질 무렵

- 길을 잃고 헤매던 골목

- 식당에서 현지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글의 구조 (총 1000자 내외)

1️⃣ 언제, 어디 (약 100자)

장면의 좌표만 제시합니다. 설명하지 말고, 위치만 찍어 주세요.

- 파리 여행 2일째 오후, 센강 위 다리에서

- 제주도 해변, 해가 거의 다 진 시간


2️⃣ 그 순간 (약 600자)

이 글의 중심입니다.

- 무엇을 보았나요?

-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누구를 만났나요?

- 날씨는 어땠나요?

- 냄새, 소리, 촉감은요?

중요한 건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앞에 선 나의 몸과 반응을 쓰는 것입니다.


3️⃣ 느낌(나머지)

그 순간에 든 생각을 적습니다.

- 여행에 대한 의미여도 좋고

- 그날의 혼란이나 평화여도 좋고

- 딱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어도 괜찮습니다.

감정을 결론처럼 정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그 순간의 마음을 남기면 충분합니다.


피할 것

- 유명 관광지 설명

- 전체 일정 나열

- 사진처럼 예쁘기만 한 묘사


담을 것

- 나만 본 것

-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 아주 작은 발견


<피드백 포인트>

이 글에서 여행지가 느껴지나요?

글을 다 썼다면,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세요.
아래 다섯 가지 중 세 가지 이상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글에는 이미 여행지가 들어 있습니다.


1. 그 장소의 공기가 느껴지나요?

날씨를 말했는지가 아니라, 공기가 몸에 어떻게 닿았는지가 중요합니다.

- 무겁고 습했는지

- 숨 쉬기 편했는지

- 피부에 달라붙었는지


2. 그곳의 소리가 하나라도 떠오르나요?

사람이 많았다는 말보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던 배경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 신발 끄는 소리

- 물이 부딪히는 소리

- 멀리서 들리던 기계음


3. 그 순간의 사소한 불편함이 있나요?

여행지는 늘 조금 불편합니다. 그 불편이 여행을 현실로 만듭니다.

- 햇빛이 너무 강했던 순간

- 모래가 신발 안으로 들어오던 감각

- 길이 막혀 기다려야 했던 시간


4. ‘현지인’이 아니라 그 순간의 타인이 나오나요?

친절했다, 무뚝뚝했다는 설명보다, 행동 하나, 표정 하나가 더 강합니다.


5. 이 장면이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망설임,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려놓은 이유가 있다면 그 장면은 이미 글이 됩니다.


<예시>

방콕의 한 골목, 숙소 근처 골목을 걷다가 고양이를 봤다. 노란 털에 한쪽 귀가 찢어진 고양이였다.

비가 막 그친 뒤라 바닥은 미끄러웠고, 고양이는 젖은 시멘트 위에 앞발만 올려두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멈췄고, 고양이도 멈췄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고양이가 먼저 몸을 돌려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그 뒤에 남은 건, 습한 공기와 쓰레기 냄새뿐이었다.


이번 주 미션

- 글 분량: A4용지 한장(10포인트)

- 여행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멈춰 섰던 순간 안에 있습니다.

- 이번 주에는, 그 순간 하나만 써봅시다.


그동안 11주를 달려오신 수강생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강생 여러분들이 생각보다 더 열정적으로 수강에 임해주셔서 저도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이제 1학기는 마지막 한 회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1학기 12화를 마치면 2학기부터는 <소설특강 실전편>이 펼쳐집니다.

계속해서 열정을 쏟아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수강생 여러분의 글이 더욱 심화될 수 있도록 저도 성심성의껏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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