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느낀 오감 활용하기
여행에 대한 글을 쓸 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합니다.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며칠을 머물렀는지 다 쓰려고 합니다. 하지만 소설과 에세이에서 여행은 기록이 아니라 순간입니다.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은 대개 하나의 장면으로 남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여행 전체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여행 전체’의 이야기를 쓰지 않겠습니다.
여행지에서의 단 하나의 장면만을 붙잡아 글로 옮겨봅니다.
주제: 여행지에서의 한 장면
범위: 해외든 국내든, 멀리든 가까이든
하룻밤 여행도, 한 달 여행도 가능합니다.
- 지금까지 가본 곳 중 기억에 남는 장소 3곳을 떠올립니다.
- 그중 한 곳에서 있었던 특정 순간 하나를 고릅니다.
- 그 순간만 깊게 씁니다.
여행 글을 쓸 때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은, 글이 ‘에세이’가 아니라 ‘일기’가 되는 것입니다.
* 쓰지 말아야 할 것: 첫날 공항 도착, 호텔 체크인/ 둘째 날 시내 관광…
✅ 여행 에세이
여행 중 단 한 장면에 오래 머무는 글을 씁니다. 여행 에세이는 많은 날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 하나를 늘려 씁니다.
- 30분에서 2시간 이내의 짧은 시간
- 특정 장소에서 일어난 일
- 이동보다는 ‘멈춤’에 가까운 순간
예를 들면 이런 장면입니다.
-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던 시간
- 해변에 혼자 남아 있던 해 질 무렵
- 길을 잃고 헤매던 골목
- 식당에서 현지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장면의 좌표만 제시합니다. 설명하지 말고, 위치만 찍어 주세요.
- 파리 여행 2일째 오후, 센강 위 다리에서
- 제주도 해변, 해가 거의 다 진 시간
이 글의 중심입니다.
- 무엇을 보았나요?
-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누구를 만났나요?
- 날씨는 어땠나요?
- 냄새, 소리, 촉감은요?
중요한 건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앞에 선 나의 몸과 반응을 쓰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든 생각을 적습니다.
- 여행에 대한 의미여도 좋고
- 그날의 혼란이나 평화여도 좋고
- 딱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어도 괜찮습니다.
감정을 결론처럼 정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그 순간의 마음을 남기면 충분합니다.
- 유명 관광지 설명
- 전체 일정 나열
- 사진처럼 예쁘기만 한 묘사
- 나만 본 것
-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 아주 작은 발견
글을 다 썼다면,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세요.
아래 다섯 가지 중 세 가지 이상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글에는 이미 여행지가 들어 있습니다.
날씨를 말했는지가 아니라, 공기가 몸에 어떻게 닿았는지가 중요합니다.
- 무겁고 습했는지
- 숨 쉬기 편했는지
- 피부에 달라붙었는지
사람이 많았다는 말보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던 배경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 신발 끄는 소리
- 물이 부딪히는 소리
- 멀리서 들리던 기계음
여행지는 늘 조금 불편합니다. 그 불편이 여행을 현실로 만듭니다.
- 햇빛이 너무 강했던 순간
- 모래가 신발 안으로 들어오던 감각
- 길이 막혀 기다려야 했던 시간
친절했다, 무뚝뚝했다는 설명보다, 행동 하나, 표정 하나가 더 강합니다.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망설임, 카메라를 들었다가 내려놓은 이유가 있다면 그 장면은 이미 글이 됩니다.
방콕의 한 골목, 숙소 근처 골목을 걷다가 고양이를 봤다. 노란 털에 한쪽 귀가 찢어진 고양이였다.
비가 막 그친 뒤라 바닥은 미끄러웠고, 고양이는 젖은 시멘트 위에 앞발만 올려두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멈췄고, 고양이도 멈췄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고양이가 먼저 몸을 돌려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그 뒤에 남은 건, 습한 공기와 쓰레기 냄새뿐이었다.
- 글 분량: A4용지 한장(10포인트)
- 여행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멈춰 섰던 순간 안에 있습니다.
- 이번 주에는, 그 순간 하나만 써봅시다.
그동안 11주를 달려오신 수강생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강생 여러분들이 생각보다 더 열정적으로 수강에 임해주셔서 저도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이제 1학기는 마지막 한 회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1학기 12화를 마치면 2학기부터는 <소설특강 실전편>이 펼쳐집니다.
계속해서 열정을 쏟아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수강생 여러분의 글이 더욱 심화될 수 있도록 저도 성심성의껏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