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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12. 2024

당신이 등단 작가라고? (2)

2부/ 그렇게 세월의 강은 흐른다

n교수는 항상 수업 전에 미리 도착하여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할 말이 있으니 들렀다 가라는 그의 전화를 받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 안은 한가했고 n교수 혼자 테이블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n교수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고 떨렸다.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킨 나는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고 n교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가 나오자 한 모금 마신 n교수가 말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고 말이야. 이곳 수필 교실에 회장을 뽑으려고 하는데 말이지. 다른 곳엔 다 회장들이 있으니 문우회가 활성화되는데 이곳만 아직 이러고 있어서……. 그래서 얘긴데 c 씨가 회장 직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회원들의 결속력도 생기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합평회도 하고 말이야. 이곳엔 뿌리가 없으니 문우회가 자리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거기밖에 인물이 없어. c 씨가 맡아서 해줬으면 좋겠어."

"저 말고도 능력 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교수님, 전 아무래도……."

"아니지. 이 교실에 c 씨 만한 그릇이 없어. 회원들 끌고 가려면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고, 포용력도 있어야 해. 그래야 회원들이 군 말없이 잘 따라오거든. 앞으로 치러야 할 행사가 한두 개가 아닌데 그 일을 누가 하겠어? 내가 오랫동안 c 씨 지켜보고 결정하는 거니까 그렇게 해. 알았지?"

이상한 일이었다. 왜 n교수 말엔 꼼짝할 수가 없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제자들 커나가는 거 바라보는 게 내 생애 가장 큰 기쁨이야. 앞으로 c 씨 앞길 잘 열리게 도와줄게. 반장, 총무는 그대가 알아서 뽑도록 하고. 응?"

나는 황송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 뒤 찻값을 치르고 n교수와 함께 강의실로 올라갔다. 강의실에는 열댓 명의 수강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n교수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꺼냈다.

"이 교실에 c 씨를 회장으로 임명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공부해서 동인지도 내고, 유명 인사들 불러서 출판기념회도 해야 하는데 이 교실엔 아직 문우회가 결성되지 않은 채로 있어서 안타까웠어요. 다시 말하면 뿌리가 없어서 회원들이 자리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거 같아 내 오랜 시간 생각 끝에 c 씨를 회장으로 임명하기로 맘을 먹었어요. 다른 데 보세요. 지금 얼마나 열심히들 하고 있는지. 그러니 여러분들은 c회장을 도와 뜻을 같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우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회장 혼자 힘으로는 힘들어요. 여러분들이 성심껏 회장을 도와 이 문우회가 빛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n교수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분위기는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n교수의 집필실인 오피스텔은 20평 정도 되는 오붓한 공간이었다. 싱크대와 작은 냉장고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n교수의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바닥에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있었다. n교수가 제자들의 합평을 위해 그의 집필실을 제공해 준 것이다. 현대문화센터와 신세계, 롯데, 압구정, 영등포, 분당, 등 n교수의 수강생들은 300여 명이 넘는다. 그중에서 등단을 했거나 등단 준비반인 제자들이 요일을 맞추어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와서 합평회를 하고 차도 마시며 공부하고 있었다. n교수의 제자들은 그를 교주처럼 떠받들고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에 쩔쩔매며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갖은 애를 썼다.


오늘은 내가 공부하는 청심문우회 회원들의 합평이 있는 날이었다.

회원들은 탁자 주위로 빙 둘러앉았다.

회장인 내가 수업 진행을 했다.

"오늘은 s 씨의 <겨울풍경>에 대하여 각자 느낀 점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s 씨가 작품을 먼저 낭독하고 나서 합평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죠."

s 씨의 작품 낭독이 끝나자 맨 가장자리에 앉은 반장이 지적하고 나섰다.

"<겨울풍경>은 제목은 좋은데, 주제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 했는지 다가오지 않습니다." 

반장이 안경 너머로 s 씨를 바라보며 평을 하자 s 씨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메모를 하고 있었다. 반장은 등단해도 좋을 만큼 글재주가 탁월했으나 아직 등단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수필에서 교훈적인 이야기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충고를 하려 드는 얘기는 삭제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앞부분의 어릴 적 이야기는 따사롭고 정겹게 비치는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훈계조로 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j 씨가 지적을 하자 모두들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j 씨는 등단해도 될 만한 수준으로 글을 잔잔하고 감동적으로 잘 쓰는 여자였다.

"작품 1쪽 다섯째 줄 보면 '그립다', 2쪽 하단 부분 '목마르게 보고 싶다.' 결말 부분 '슬퍼서 울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슬프다고 해서 작가가 직접 목소리를 내어 슬프다,라고 말해버린다든지, 그립다,라고 직접 말하기보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독자가 그 글을 읽고 느끼게 하는 기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고에서 국어 교사를 했다는 r여사가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꼼꼼하고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나왔다.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우면 누가 글 쓰는 걸 어렵다고 하겠어요? 알면서도 잘 안 되니까 그러지요?"

제과점을 하고 있는 p 씨가 r여사의 말을 받아 한 마디 거들자 다들 웃음을 터트리며 맞장구를 쳤다.

청심 문우회 회원들은 합평을 하고, 좋은 책을 추천하고, 다음 주 발표할 글을 정하는 등 보다 더 적극적이고 발전하는 청심 문우회를 만들자고 결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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