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해 가을,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 세 명이 우리 집에 와서 숙제를 했다. 아이들은 숙제를 끝내고 나가 놀거나, 게임을 하곤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해먹이거나 라면을 끓여주었다. 재미를 붙였는지 아이들이 날마다 집으로 와서 공부했다.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가르쳐 주었고, 아이들도 좋아했다. 시험을 봤는데 우리 집에서 공부했던 아이들이 운 좋게도 모두 성적이 오른 모양이었다. 며칠 후 아이 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지도해서 성적이 모두 올랐는데 학원에 보내기는 싫고 집에서 개인지도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엄마들과 의논해 봤는데 모두 찬성했다는 것이다. 내가 교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가르쳐본 경험도 없어서 자신이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성적을 올려주지 못하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 엄마들의 성화는 끈질겼다. 그냥 아무 말 안할테니 지금 하던 대로만 해달라며 수업료를 놓고 가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남편과 상의 했더니 그냥 좋은 일 하는 셈치고 해보는 것도 나쁘지않을 것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성적을 올려놓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컸지만, 내 아이 가르치듯 성심껏 아이들을 지도했다. 물론 나도 큰아이 책을 풀면서 미리 공부해야 했다. 초등학교 문제지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 세 명을 데리고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자꾸 늘어났다. 시험 기간에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공부를 시켰으며, 기초가 없는 아이들은 기초부터 가르치고 모르는 문제는 밤 열시가 넘어도 꼭 알고 가게 했다. 다행히 아이들 성적은 올랐다. 더구나 큰아이가 전 과목 올백을 받아 전교1등을 했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학부형들로 일년만에 아이들은 삼십 명이나 늘었다. 학년마다 시간을 짜서 오후 2시부터 밤10시까지 수업을 했다. 수입은 짭짤해진 반면에 성적에 민감한 학부모들을 상대하다 보니 항상 부담감이 따랐다. 시험 점수 한 두 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성적이 올라가고 떨어짐에 따라 선생의 실력과 직결시키는 학부모들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감이 따랐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그날 먹을 것을 미리 해두었다. 식사 시간에 일일이 챙겨주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도 퇴근하고 오면 스스로 차려 먹어야 했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내 아이처럼 신경을 쓰고 진심을 다했다. 하지만 수재들만 오는 것도 아니고 10명 중 8명은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대부분이어서 아무리 설명해주고 몇번 반복해서 알려주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가 많았다. 더구나 여자 아이들 중엔 시샘이 많아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다른 아이에게 무심코 웃어도 선생님은 누구만 이뻐한다하고, 자기가 잘못하여 지적받으면 자기만 미워한다고 집에 가서 우는 경우가 많아 학부모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생 수가 늘어나자 집에서 수업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초등학교 앞에 학원을 차렸다. 강사를 두고 운영했지만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시험 때가 되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아이들을 다그치며 밤늦게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시험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을 빠져나가는 학생 수가 늘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지도했지만, 아이들이 학원을 그만둘 때는 너무 냉정하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사랑했던 연인에게 배신 당한 것처럼 떠나간 아이가 보고 싶어 혼자 애태우며 마음을 달래야 했다. 온마음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폈건만, 그게 반드시 돈 때문만은 아닌데,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고, 정서적인 연대감없이는 아이들이 나를 따르지 않는 건데 학부모들은 성적에만 모든 포인트를 두었다.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들여다 본 거울 속에서 너무나도 선명한 눈가의 주름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당연히 주름이 지어질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공처럼 쫓기듯 살아온 이 지점 동안 난 뭘 이루어 놓았는가.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느 사이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늙어 가고 말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동안 자식 위해 남편 위해 바쁘게 살아왔는데 나는 뭔가. 그동안은 '나'가 없는 생활을 해왔다는 자각이 들면서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가족들은 나의 사랑과 관심을 짐스러워 했으며 그냥 엄마는, 아내는, 아쉬울 때 손 내밀면 언제 어디서나 충족을 해 줄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너무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없으면 불편하고, 있어도 없는 듯 그저 묵묵히 지켜주는 그런 역할을 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우울해지는 일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를 찾는 뭔가가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