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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10. 2024

그리움을 찾아서

1부/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31. 2024

오동도.

바다 위에 떨어진 오동잎의 형상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섬.

나는 이미 내 가슴속에서도 아련히 멀어져 버린 기억 하나를 붙잡고 오동도를 찾았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는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려는 듯 약간 과장된 모습으로 뚜벅뚜벅 바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기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바다로 가는 길목엔 대나무 숲길이 이어져 있었고, 나는 무심히 숲길 끝에 서 있는 하얀 등대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너무 맑고 파랗다고 느끼던 순간, 등대로 향하는 대나무 숲길로 조심스레 그가 내 손목을 끌고 들어가 내 입술에 키스했다. 당황한 나는 반항할 틈도 없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유난히 까만 눈썹을 한 그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심장이 정지해 버린 느낌이었다. 배우 못지않게 잘생긴 그의 모습을 보며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는 왠지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시크함과 우수가 배어있는 얼굴이었다. 차가운 도시 남자의 고독한 표정은 이상한 매력으로 내 마음을 흔들었다. 사귀는 여자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런 남자를 닮은 아들 하나 낳으면 원도 없겠다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그날은 그와 첫 번째 데이트였고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던 오동도 언덕길을 오르며 그와 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생각보다 소탈하고 마음이 따뜻한 남자였다.

그의 집은 산골짝이 풀숲을 이뤄 차바퀴 굴러가던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던 깡촌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돌자 읍내에서 호기롭게 택시를 잡더니 나를 향해 타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 부근 어디쯤인가 보다 하고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가도 가도 택시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앞도 보이지 않는 시골길은 어둠 그 자체였고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다가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길을 막고 있었다. 그는 으레 그런 일이 늘 있는 일이라는 듯이 택시에서 내려 운전기사와 함께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길가로 치웠다. 택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다가 냇물이 나오자 택시는 그 냇물 위를 스르르륵 건너는 것이다. 차는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으로 꾸역꾸역 들어갔다. 간신히 차 한 대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길로 들어서자, 길 양쪽이 풀숲을 이뤄 차바퀴 굴러가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고 스르륵스르륵 차가 달리고 있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길 양쪽으로 전봇대가 우뚝우뚝 서 있었다. 그는 이 산간벽지에도 이제 전기가 들어왔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이 나라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있었나 신기해했고, 도착한 시댁엔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우리 절을 받으시던 시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며느리 봤으니 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아직 결혼 결정을 하지 않고 있었던 나로서는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뭐라 달리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운명이었을까. 나는 시댁의 가난마저도 청빈해 보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는 지게를 지고 시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일을 도왔다.

나는 그의 지게 진 모습에 킥킥대며 장난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엉성한 그 모습은 서울 한복판 높은 빌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그의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밥을 복스럽게 먹지 못하고 깨작댄다며 나를 걱정하던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했다.

“새아기는 밥도 잘 안 먹고 뭘 잘 먹는디야?”

남편은 과일 킬러라고, 나중에 땅 사서 과수원 하며 살아야 할 거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한낮에 어디를 나가시더니 큰 양푼 가득 과일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참외, 복숭아, 자두, 수박, 토마토가 쏟아져 나왔다.

여름날, 땡볕에 먼 읍내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위해 과일을 사 오신 시어머니.

“새아기 과일 좋아한다고 해서 읍내까정 가서 사왔으니께 어여 먹어라. 새아기 맛나게 먹는 모습 한 번 보면 원이 없겄다. 어여 먹어.”

하시면서 과일을 깎아 주셨다.

가슴이 뭉클했고, 그 과일을 먹으면서 난 결심했다. 이런 부모라면.


그는 가난한 집 장남이었다.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한 우리는 마포 허름한 단칸방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보일러가 고장이 난 방에서 그는 차가운 이불로 먼저 들어가 이불을 따뜻하게 덥혀주곤 했다. 결혼하고도 맞벌이를 계속했던 나는 날마다 회사로 집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생활이 힘들었지만 아파트 대출 이자, 아이들 학원비, 늘어나생활비들 감내하며 고단한 삶을 이겨나갔다.

결혼하여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 가봤지만, 일 년에 두 번 휴가 때면 여행 대신 시댁에 내려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많지 않은 농사였지만 부모님 고생하시는 걸 남편은 항상 애달파했고, 시댁에 가지 말고 우리끼리 가족 여행 한 번 가자고 하면 나를 철없는 마누라 취급하며 못마땅해했다.


지금은 시부모님도 다 돌아가셨고, 그도 떠났고 들여다볼 시댁도 없어졌다.

그때는 너무 힘들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낯설고 서툴던 새댁시절의 시골길, 무더운 여름에 버스를 두세 번씩 갈아타며 지쳐버린 아이들을 데리고 타박타박 걷던 땡볕 길, 겨울이면 추위와 눈발 속에 푹푹 빠지는 눈길을 언 손을 호호 불며 걸어갔던 그 황량하던 길. 그래도 그때가 그리워진다.

때론 투덜거리며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고, 부부싸움도 많았다. 너무 가난한 시댁 형편을, 무늬만 부모인 무능한 시부모님이 야속해 보이기도 했다.

밤이 되자 돌산대교에 휘황한 불빛이 드리워졌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그 불빛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 소리들. 낯선 도시의 불빛 속에서 문득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비가 뿌리고 바람이 거세다. 난 어디로 가야 하나?사실 이번 휴가의 목적은 ‘그리움을 찾아서’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허허롭다. 아무것도 모르던 새댁 시절, 돌이켜보면 그때가 황금기였던 것을. 그때는 사느라 여유가 없었고, 삶이 고달프기만 했다.


가난한 농부의 장남이었던 남자, 항상 부모와 동생들 걱정을 달고 살던 남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마누라에게 항상 미안해하며 당당하게 기를 펴지 못했던 남자. 두 아들의 아빠. 그저 평범한 보통 남자였던 그는 지상의 어떤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는 이미 이곳을 떠나 먼 곳에 있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하늘은 푸르게 빛날 것이고, 장마 때가 되면 억수같이 비가 퍼부울 것이고, 겨울이 되면 거리가 흰 눈에 쌓일 것이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갈 것이고, 사람들은 강물이 흐르듯 군중 속으로 합류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 역시 그들과 스며들어 흘러가겠지.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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