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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12. 2024

당신이 등단작가라고? (3)

2부/그렇게 세월의 강은 흐른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수강생들이 늘지 않자 n교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나는 n교수의 눈치를 보며 뒷자리에 앉아 회원들의 머리통을 세기 시작했다. 머리통은 열 두 개였다. 등단한 회원들은 수업에 나오지 않고 n교수의 집필실에서 합평회를 하며 문단 행사가 있을 때만 얼굴을 비쳤다. 교실의 수강생들은 등단하지 않은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스물 남짓 되던 머리통들이 이번 학기에는 등록을 하지 않아 더 썰렁했다. 수업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은 채 마음을 조이며 애를 태우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아니나 다를까 n교수가 나를 불렀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1층 커피숍으로 내려갔다.

"다른 데는 말이야. 회원 유치를 위해 회장들이 발 벗고 나서서 야단들인데, 내가 볼 때 청심은 아무런 대책도 안 세우고 있는 거 같아. 어떻게 생각해?"

"죄송합니다, 교수님. 등록 안 한 기존 회원들에게 나름대로 전화는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돼. 아무래도 내가 회장을 잘못 뽑은 거 같아. 이렇게 수강생들이 없어서야. 바쁜 내가 열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수강생들 강의하러 여기까지 와야 되겠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회장을 잘못 뽑았다는 n교수의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혀왔다.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n교수를 돕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수강생들이 늘지 않는 탓을 나에게 하는 n교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좀 적극적으로 나서봐. 현대 같은 데는 말이야. 회장이 백화점 앞에서 전단지 나눠주고, 백화점 홍보팀에 연락해서 문화센터 회원 늘리느라 애들을 쓰는데, 가령 예를 들어서 말이야. 등단한 사람들을 문화센터 팸플릿에 광고를 내달라고 하란 말이야. 그러면 백화점 측에서도 나쁠 건 없지. 문화센터 출신이 등단했다 하면 백화점 홍보도 되고. 내가 꼭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 지금 신세계 나래문학회 회장은 해마다 백일장을 열고 있잖아. c회장도 알다시피 그거 백화점 측에서 다 해주는 거라고. 상금을 주고도 손해 나지 않으니까 그런 행사들을 하는 거 아냐? 우리는 그날 뽑힌 수상자들 등단시켜 회원으로 만드는 거고. 거기가 회원이 제일 많잖아 지금. 그렇게 까진 못하더라도 말이야. c회장은 너무 추진력이 없어. 내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 커."

"더 이상은 자신이 없네요. 아무래도 제 능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지금 나에게 반항하는 거야? c회장 지금 다분히 감정적으로 나가고 있어."

"그런 거 아닙니다, 교수님. 능력이 부족한 제가 너무 힘들게 문학회를 이끌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집에서도 반대가 심해서요."

"지금 c회장이 그만두면 청심 문우회가 어떻게 되는지 알기나 하고 그런 소리 하는 거야? 그런 책임 없는 발언이 어디 있어?"

나는 n교수의 시선을 피한 채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종업원에게 커피 리플을 부탁한 n교수가 갑자기 톤을 낮추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나를 배신하고 떠나는 사람은 문단에서 공중분해 되고, 결국엔 매장당하고 말아. 글을 아주 안 쓸 거라면 몰라도 글을 쓸 거라면 나를 통하지 않고 어디에도 설 수가 없어. 의외로 좁은 곳이 문단이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인간 들치고 제대로 글 쓰는 인간 내 본 적이 없어. 그래도 가겠다면 잡지는 않아. 가는 제자 안 잡고, 오는 제자 안 말려. 하지만 그대는 달라. 내가 얼마나 아끼고 신임하는데 그런 소릴 하고 있어. c회장도 알다시피 내 제자들이 지금 300명도 넘어. 하지만 그중에 내 애제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몇 명 안 돼. 내가 c회장을 애제자로 생각하고 있고 키워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런 소리 하면 내가 서운하지."

n교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스승을 떠나는 일은 제자로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그것은 배신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n교수를 떠나고 난 뒤 그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 역시 그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내 존재 확인을 했던 터여서 글을 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n교수가 저러는 건지도 몰랐다. 사실 n교수를 떠나는 일은 절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절필하고 난 이후의 삶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었다.


수필로 등단하고 나서부터 바깥출입이 잦아지고 공을 들인 음식 대신 인스턴트식품이 식탁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자꾸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n교수 때문에 수시로 생기는 시화전, 출판기념회, 세미나로 인한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글을 배우기 위해 나왔는데, 행사로 소요되는 시간이 더 많았고 행사를 치르기 위해 신경 쓸 게 끝도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동안 쌓아 온 노력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버텨 온 건데 이제 회원들 줄어드는 것까지 내 책임으로 모는 n교수를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좀 더 심사숙고 한 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몇 초간이 지루하고 견딜 수 없어서 n교수와의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한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자리를 떨치고 나왔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가슴속이 뻥 뚫린 것처럼 허허로웠던 나는 글을 쓰면서 자존감을 서서히 찾아가고 있었다. 글을 쓰면 내가 살아있다는 확신이 들고, 한 편의 글이 완성될 때마다 얻어지는 성취감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지고 보람 있었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꾹 참아왔던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n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때, 기분은 좀 풀렸어? 아까 내가 좀 심하게 했는데, c회장 힘들게 일하는 거 내가 왜 모르겠어. 그러잖아도 c회장에게 문학상 하나 줄려고 추진 중인데, 기분 풀어. 응?"

문학상? 별로 반갑지 않은 얘기였다. 그런 말을 듣고 감격하기에는 이미 n교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n교수는 회유 쪽으로 작전을 바꾼 듯했다. 사람들을 많이 다루어 본 늙은 여우임이 틀림없다.  겉멋만 잔뜩 든 아줌마들의 허영기를 적당히 충족시켜 주고 그걸 이용하여 영리를 취하고, 자기 쪽의 제자들을 영합하여 문단 선거전에서 유세를 하고, 그리하여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이 늪 같은 군단에서 이제는 발을 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늘은 공해 때문인지 뿌옇게 흐린 날이었다. n교수의 집필실로 향했다. 오늘은 n교수가 하루 종일 집필실에 있는 날이었다. 오피스텔 초인종을 눌렀다.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에 놀란 n교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n교수는 약간 과장된 목소리로 양쪽 어깨를 들썩거리며 앉기를 권했다.  

"그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교수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응, 해 봐. 뭔데?"

"교수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남편이 반대하여 도저히 더 이상은 힘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떨구고 말하는 내 어깨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n교수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어떤 소리를 듣는다 해도 꿈쩍하지 않겠다, 마음을 다잡고 온 때문이기도 했다.

"응, 그래? 알았어. 힘들다면 할 수 없지 뭐. 그래, 잘 가."

나는 잠깐 귀를 의심했다. 너무나도 쉽게 내 말에 수긍하는 n교수의 태도가 믿어지지 않아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n교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보면 평온하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그래, 가봐. 건강하고 응?"

짧게 말을 던진 n교수는 나를 일별하고 창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눈빛이 차가웠다. n교수는 아무리 잡아도 결국 내가 떠날 걸 알고 정리를 한 눈치가 역력했다.


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황급히 그곳을 나왔다. 어둡고 칙칙하고 답답한 터널을 막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숨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난 뒤, 후 하고 내뿜었다. 가슴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슴 밑바닥에서 뭉클 솟아오르는 울컥한 이 감정의 기복은 무엇인가. 3년 반 동안 헛것을 쫓아다녔던 지난 세월에 대한 연민인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떠내려가다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는데 한없이 꺼져 들어가는 이 막막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당분간 모든 걸 잊기로 하자. 어쩌면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너편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켜졌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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