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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14. 2024

아들의 가출

2부/ 그렇게 세월의 강은 흐른다

아침에 학교에 간 작은 아들이 밤이 돼도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방바닥에 깨져 있고, 달리 연락할 곳도 없었다.

그동안 작은 애는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전학시켜 달라고 수없이 말했다.

“왜? 이유가 뭐야?”

“그냥, 전학시켜 주면 안 돼? 꼭 이유가 있어야 해?”

“아니, 중3 되자마자 두 달도 안 됐는데 전학시켜 달라니, 이유를 알아야 전학을 시키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작은 애는 학교 다니기 싫은 이유도, 전학 가고 싶은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날마다 막무가내로 학교 다니기 싫다는 아이의 말을 난 묵살 했다.

남편이 물어도 녀석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학교 가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바빠서 다음 주에 가려고 미뤄둔 터였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는지 작은 애는 결국 가출을 강행했다.


가족들은 밤늦게 녀석을 찾아 나섰다. 우선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로 갔다. 학교 정문은 잠겨 있었다. 당직 교사에게 전화로 협조를 구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교무실이 있는 본관 쪽으로, 나는 큰 애와 함께 급식실이 있는 후문 쪽을 훑었다. 혹시나 몰라서 화장실 뒤편, 쓰레기장까지 으슥한 곳은 다 찾아다녔다. 없었다. 또다시 작은 애가 다니는 학원가 미술학원 주위를 찾기 시작했다. 녀석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밤의 흥청거림과 사람들의 물결로 또 다른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골목 뒤에 자리한 모텔, 현란하게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술집과 노래방. 그런 곳에 가 있을 상상을 하며 녀석의 얼굴을 떠올려 봐도 도저히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PC방을 찾아다녔다. PC방에는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져있었다. 그 한쪽 구석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작은 애가 웅크리고 있지나 않을까 했던 우리들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어질러진 작은 애 방을 청소하고 녀석의 베개를 끌어안고서 아이를 기다렸다.

입술이 바작바작 타들어 갔다. 도대체 이 녀석이 어디 가서 뭘 하고 있을까. 돈도 없이 나갔는데, 거리를 방황하며 얼마나 배가 고플까. 학교도 안 가고 학원에도 가지 않은 채 이틀밤을 들어오지 않는다.     

사흘째가 되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사고가 난 걸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소식이 없을 리 없었다. 기껏해야 하루 이틀 있다가 돌아올 줄 알았다. 거리에 구급차가 지나가면 그 속에 녀석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일단 지구대에 가출 신고를 했다.


밤이 되자 무작정 서울역 지하도를 찾아갔다.

갈 곳 없는 녀석이 헤매다 그곳에 쪼그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찾기 위해 노숙인들을 찬찬히 살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스티로폼이나 라면상자를 깔고 누워있던 노숙인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코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역겨운 냄새가 올라왔다. 헝클어진 머리와 초점 잃은 눈동자로 넋이 빠져있는 내 모습을 본 노숙인들이 소주를 마시며 농지거리를 하기도 했다. 키득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 눈빛은 거리 이곳저곳을 떠돌며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밤거리를 헤매면서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엉켜있던 감정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작은 애가 가출한 지 닷새가 지났다. 큰 애는 인터넷에 동생을 찾는 광고를 냈고, 나는 작은 애 사진을 넣어 제작한 전단을 곳곳에 붙였다.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 
나이: 16세, 키: 178센티 정도.
용모: 얼굴 하얗고 호리호리한 편.
짧은 머리에 교복을 입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을 보셨거나 아는 분은 연락해 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나는 붐비는 지하철역 앞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었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그냥 말없이 전단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몇 걸음 못 가서 전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걸 본 후엔 일일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나눠주었다.

“우리 아들이 집을 나갔어요. 이런 아이를 보시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나는 눈물이 뒤범벅된 얼굴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전단을 손에 쥐여주었다.

사람들은 안 됐다는 표정으로 전단을 들여다보거나, 가방에 집어넣기도 했다.


작은 애가 가출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핸드폰에 발신인 제한번호가 떴다. 작은 애였다.

“어디야? 지금 어디 있는 거냐고. 밥은 먹었어?”

나는 급한 마음에 속사포처럼 작은 애의 거취를 물었다.

대책도 없이 가출한 녀석은 무작정 길을 가다가 감자탕집 유리문에 <알바 구함> 팻말을 보고 들어갔다고 했다. 키가 크니까 서빙 일을 맡겨도 될 것으로 보였던 식당 주인은, 아이의 일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결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집에서도 방 청소 한번 하지 않던 녀석이었다. 일이 손에 익지 않아 당황했을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르바이트할 생각을 했다니. 그제야 마음이 놓이면서 웃음이 나왔다. 녀석의 전화 한 통화로 지옥 같던 마음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감자탕집에서 쫓겨나 다른 곳을 알아보려고 가던 중에 엄마에게 전화한 아이가 그저 반갑고 기특했다.


“엄마, 나 집에 들어가면 혼낼 거야?”

“혼내긴 왜 혼내. 우리 아들을, 무조건 들어와. 알았지? 집에 와서 이야기하자. 엄마가 바빠서 너에게 신경을 못 써줬어. 미안해.”

“엄마, 나 들어가면 왜 가출했냐고, 핸드폰 왜 깨트렸냐고 이유를 묻지 말아 줘. 자꾸 묻고 그러면 나, 집에 안 들어갈 거야.”

뚜, 뚜, 뚜.

공중전화 단말 음이 울렸다.

나는 앞뒤 재고 말고 할 틈이 없었다.

“알았어, 일단 무조건 들어와! 엄마 말 알아들었지?”

“내일 다시 전화할게.”

전화가 뚝 끊겼다.

작은 애는 다음 날 다시 전화했다.

“알았어. 너 하자는 대로 다 할 거니까 들어오라고. 알았지? 기다릴게. 응?”

다음 날, 작은 녀석이 돌아왔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식구들이 다 집에 있었다.

식구들 환영을 받으며 들어선 작은 녀석은 어색한 듯 멋쩍어했다.

남편이 아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잘 왔다. 우리 아들.”

녀석은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는지 조용하다.

일단 봉합은 했지만,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부모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더 사랑하는 쪽이 항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남편과 작은 아이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자식을 온전히 키워내는 게 이렇게 애간장을 태우고 엄마를 성찰시키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어디서 엄마 교육을 제대로 받고 엄마가 된 엄마는 없을 것이다. 나도 엄마 처음 해보는 거라, 시행착오가 많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도 처음이야 엄마가. 그래서 항상 서툴러. 때론 어떡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가 많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잖아. 그렇지만 노력할게.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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