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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13. 2024

아들, 엄마가 미안해

2부/ 그렇게 세월의 강은 흐른다

아들이 어릴 때, 나는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한 아들이었지만 일부러 엄하게 길렀다. 너무 받들어 키우면 나약해질까 봐, 이 험난한 사회에 적응을 못 할까 봐. 그게 내 나름의 사랑 방식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에도 학교에 우산을 갖다 주지 않았다. 물론 학원 수업 준비 때문에 바쁜 탓도 있었지만, 일부러 더 그랬다. 아들은 불평 없이 으레 그러려니 하고 겉옷을 벗어서 뒤집어쓰고 오거나, 친구의 우산을 같이 쓰거나, 가방을 머리 위로 받치고 엄마가 하는 학원으로 오곤 했다.

학교 준비물을 빠트리고 갔을 때도 갖다 주지 않았다. 준비물을 못 챙겨 와 수업에 지장이 생기면 정신 차리고 앞으로 잘 챙기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당시의 내 방식이 반드시 올바른 것이었는지 장담할 순 없지만,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했다. 그럼에도 아들은 그런 엄마에게 불평하거나 투정 부리지 않았다. 어쩌면 속으로는 불만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짠하게 걸리는 게 있긴 하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였다. 아픈 어린것을 혼자 병원에 보냈다. 가서 아픈 증상을 자세히 말하고 진료 후 약을 받아 오라고 시켰던 것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어떤지 아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래놓고 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미행하듯 뒤를 따라갔다. 다행히 아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들은 타박타박 신호등을 건너고, 차가 오면 한쪽으로 멈추었다 가는 조심성을 보였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한 아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앞에 숨어서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병원을 나온 아들이 약봉지를 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갔다. 나는 또 살금살금 아들을 뒤따라갔다. 아들이 집으로 들어가면 나는 어디 갔다 온 것처럼 뒤늦게 들어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아들의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다. 아이고 잘했네, 내 아들! 하면서. 그 후로도 아들은 아프면 혼자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임무 수행을 잘 해냈다. 


그 당시 수영장에 보냈는데, 수영장도 혼자 보냈다. 나는 아들이 수영장을 잘 가는지 떨어져서 뒤따라갔다. 아들은 육교를 건너서 차도를 지나 무사히 수영장에 도착해 수영을 하곤 했다. 나는 수영장 유리벽 너머로 아들의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집에 오곤 했다.


한 번은 기말고사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학원에서 밤늦게 들어오느라 세탁기를 돌리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엄마, 체육복!”

월요일 아침, 아들이 체육복을 급히 찾았다. 체육복은 세탁기 통 속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울상이 되어 있는 아들에게 세탁기에 있는 옷을 그대로 꺼내 입고 가라고 했다. 아들은 그걸 꺼내 입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나는 세탁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세제 넣고 전원 버튼만 누르면 세탁이 되는 간단한 방법을 아들은 일찍부터 터득했고, 탈수가 끝나면 꺼내 널기까지 했다. 실내화도 아들 스스로 빨게 했다. 금요일 하교 후 아들은 실내화를 빨아서 베란다에 세워놓곤 했다.


어느 날은 실내화 빠는 걸 깜빡 잊고 있다가 일요일 오후에야 실내화를 부랴부랴 빨아 베란다에 세워 둔 아들이 걱정을 했다. 내일 아침까지 실내화가 마르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나는 아들 실내화를 가져와 물기를 빼고 마른 수건으로 꾹꾹 눌러 짠 뒤, 헤어드라이어로 말렸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 아들은 실내화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전자레인지 안에 뱅글뱅글 돌아가는 실내화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우리 가족들은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실내화를 들여다보며 모두 하하 웃었다.


“너네 엄마 계모야?”

비 오면 우산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들에 비해, 맨날 비 맞고 가는 아들을 보며 아들 친구들이 하는 말이었다. 실내화도 안 빨아주고, 세탁기도 아들에게 직접 돌리게 하는 엄마. 준비물 빠트렸다고 허둥지둥 학교로 달려가는 다른 엄마들과 너무나 비교되는 엄마였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걸리는 게 또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들에게 신문 배달을 시켰다.

어느 날, 아들과 아들 친구가 둘이서 신문 배달을 해보겠다고 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어두운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당시 산동네였던 봉천동에서 신문 배달이라니. 나는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난 아들은 친구와 함께 신문보급소에 가서 신문을 배급받아 배달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나와 남편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괜찮냐, 했더니 재미있다고 했다. 다음날도 아들은 새벽부터 일찍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보급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들도 오지 않았고 친구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일찍 나갔는데 어찌 된 일인가 싶어서 아들 친구네 집으로 갔다. 아들과 친구 우진이가 거실 한쪽에서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번쩍 올리고 벌을 서고 있었다.

우진이 아빠가 화가 단단히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우진이를 학원에 공부하라고 보냈지, 신문 배달하라고 보냈습니까?”


선생이면 공부나 시킬 일이지 남의 귀한 아들을 왜 신문 배달하라 마라 하느냐며 화를 냈다. 아들을 무릎 꿇어 벌을 세운 우진 아빠가 원망스러웠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 사과를 하고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사고방식이 다른 우진이 아빠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아들은 그 후로 한 달 동안 혼자서 신문 배달을 했다.

“아들, 한 달 신문 배달 체험해 봤으니 힘들면 그만해.”

아들은 힘들었는지 더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어떤 게 가장 힘들었어?”

“개가 뛰어오는 게 제일 무서웠어.”

나는 아들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봉천동 산동네 골목길을 돌며 신문을 돌렸을 아들. 어두컴컴한 새벽,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뜩이나 겁도 많은 녀석이 개에 쫓기며 얼마나 가슴이 타들어 갔을까.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일이다. 그렇지만 궁금해지는 건, 아들이 엄마 마음을 알았을까? 싶은 것이다. 엄마는 강하게 크라고, 나약해지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기르라고 그랬던 건데, 그런 엄마 마음을 알고나 있었을까. 그런 일을 시키면서도 저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하는 것이다.


미안한 일은 또 있다. 게임기가 고장이 나서 수리점에 보낸 일이었다. 사실 제 동생이 게임기를 고장 냈는데,  아들에게 당장 고쳐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지하철역 앞에 있는 수리점은 출구 반대쪽에 있었다. 이쪽 같아서 출구를 나와 보면 저쪽에 있고, 다시 지하철 통로를 들어갔다 나와 보면 반대쪽에 있고. 나도 몇 번 그 지하철역 앞에서 헤맸던 적이 있었다. 아들 역시 수없이 지하철 통로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밤늦게야 게임기를 고쳐왔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아들이 잠든 방에 슬며시 들어가 자는 아들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까 게임기 때문에 아들을 혼낼 때 아들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방울이 가슴에 맺혀 자꾸 어른거렸다. 나는 아들이 깰까 봐 손도 잡지 못하고 속으로 말했다. 

"아들, 엄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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