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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16. 2024

형제의 난

2부/ 그렇게 세월의 강은 흐른다

퇴근해서 들어오니 집안 분위기가 냉랭하다.

두 아들 넘 들이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밖에 나와보지도 않는다.

큰 넘 방문을 열려고 하니 잠겨 있다. 노크를 하니 부어터진 얼굴로 문을 열어준다. 이유를 물었다. 형과 동생이 핸드폰 때문에 싸움이 났는데 다혈질이고 성질 급한 동생 넘이 그만 형의 얼굴로 펀치를 날린 것이다. 그래서 둘이 치고받고  한 모양이다.

세 살 터울인 이 녀석들은 어릴 적부터 잘 싸웠다. 형이 좀 무서워야 되는데, 순해 터져서 동생이 형 알기를 만만하게 보고 걸핏하면 대들고는 했다. 그 풍경이 어땠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 또 형이라는 넘이 깐죽깐죽 동생 자존심을 긁어 열을 받게 했을 게 뻔하고, 성질 급한 동생 넘은 그걸 못 참고 한 대 날린 것이다.     

나는 소리를 높여 작은 넘을 불렀다.

내가 온 기척이 나도 밖에 나와보지도 않는 걸 보면 잘못한 걸 아는 터라 얼굴을 비치지 못하는 것 같다.

작은 넘이 죄지은 얼굴로 눈치를 보며 나왔다.

나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 짐 싸."

"왜애."

"짐 싸서 집 나가라고 이 자식아. 우리 집이 이제 막 나간다 이거지. 동생 넘이 형 때리고, 이렇게 막 가자는 거지 이제. 응?"

"형이 자꾸 깐족대잖아!"

"뭐라고 이 새꺄? "

듣고 있던 큰 넘이 공격 태세를 취한다.

"조용히들 못해?"

나는 소리를 질러 둘 사이에 전개될 상황을 미리 견제하고 거실로 나갔다.

"니들 둘 다 이리 와."

아들 넘들이 부어터진 얼굴로 내 앞에 와서 앉는다.

그 사이 남편이 퇴근해 들어온다.

집안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알아차린 남편이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욕실로 들어가 씻는 물소리가 들렸다.     


"니 들, 둘 다 오늘부터 집 나가서 살아. 이제 스무 살이 다 되도록 키워줬으니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이제 다 컸으니 밖에 나가서 뭐든 해서 먹고살면 돼. 나가. 다시는 들어올 생각 말고 지금 당장 짐 싸서 나가. 엄마 아빠도 그동안 니들 먹이고 가르치느라, 등이 휘었다. 이제 우리 노후도 생각해야 되는데, 그동안 니들 땜에 엄마 아빠 인생은 제로야. 마침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둘 다 나가."


"엄마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날더러 어디로 나가라고."


작은 넘이 애틋한 눈빛으로 말한다.

한번 가출의 뼈저리고 혹독한 경험을 해본 작은 넘은 나가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그러니까 왜 형을 때리고 그래 이 자식아. 너부터 나가. 당장 빨리 짐 싸서 나가란 말이야."

나는 정말 나가라는 듯이, 무서운 얼굴로 작은 넘에게 호통을 쳤다. 속내는 큰 넘 들으라고 더 큰소리를 쳤다.

"형도 나 때렸어. 나만 형아 친 게 아니라고."

"조용히 못해? 뭘 잘했다고."

"엄마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 줘.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엄마 잘못했어."

아직 고등학생인 작은 넘이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빈다.

말이 끝나자 큰 넘이 제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나는 작은 넘에게 손짓을 하며 형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빌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작은 넘은 형 방 쪽으로 손짓을 하는 내 몸짓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쭈뼛거리며 큰 넘 방문 앞으로 가더니 문앞에 바짝대고  말한다.

"형아,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한 번만 용서해 줘."

"됐어 이 새꺄. 꼴 보기도 싫어 저리 꺼져. "

큰 넘이 여간해서 화가 풀릴 기색이 아님을 알아챈 나는 작은 넘을 제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큰 넘은 진짜 나갈 결심인지 가방에 옷들을 챙겨 넣고 있다.

나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나가려면 엄마가 사준 옷은 못 가져간다. 니가 돈 벌어서 산 옷들만 가지고 나가. "

큰 넘은 네, 알겠습니다. 하며 내가 사준 옷들을 하나씩 제 침대에 내동댕이 친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이 정말. 너 진짜 이럴 거야?"

" 네!”     

"동생하고 싸웠다고 기어이 집 나가겠다고 이 새끼가 정말."

"지긋지긋해. 저 새끼!"

큰 넘은 도저히 누그러질 기미가 없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방에서 손짓하며 말한다.

"당신은 이리 와."

"이 넘이 진짜로 집 나가겠다잖아!"

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이미 엄마의 위신이고 뭐고 없다.

"기어이 집 나가겠다고 저러는 거잖아 지금."

"당신 이리 못 와?"

남편이 소리를 지른다.

나는 훌쩍거리며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았다.

"너 이리 좀 와 봐. "

남편의 말 한마디에 큰 넘이 다가와 앉는다.

작은 넘도 지 형옆에 앉아 무릎을 꿇는다.


“아빠가 덕이 없어서 이런 일이 났다. 미안하다.”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너 굳이 나가고 싶다면 아빠는 말리지 않겠다. 나가는 건 오늘 밤 아니라도 좋아. 네가 나갈 마음이 있으면 언제라도 나가고 싶을 때 나가도록 해라. 너도 성인이고 대학생인데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나이 됐다. 아빠는 너에게 고맙다. 우리 아들, 어릴 때부터 속 한 번 안 썩이고 엄마 아빠에게 잘했어. 너로 인해 희망을 알았고, 기쁨도 많이 주었다. 고맙다. 너는 그동안 우리에게 효도 다 했어. 그것으로 됐다. 네가 어디를 가서라도 잘 살아 준다면 아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디를 가서라도 집안 식구 다 잊어버리고 이제는 너만을 위해 살아라. 네가 엄마 아빠 한 번도 안 찾아도 이 아빠는 하나 서운해하지 않을 거야. 너 그동안 그만큼 했으면 잘했어.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너 혼자 독립하는 데 아무 도움도 못 돼줘서 미안하다.”


남편은 울먹이는 목소리였지만 차분하고 단호했다.

큰 넘이 컥컥하고 울었다.

작은 넘은 아빠 한 번, 엄마 한 번, 형 한 번 쳐다보며 눈치를 보고 있다.

아들들이 물러가고 집안은 물에 잠긴 것처럼 조용했다.     

그 후, 3시간이 지나서 큰 넘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남편과 나는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큰 넘은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렸다.

녀석의 코끝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말을 안 한다고 그 녀석의 마음을 모를까.

나는 큰 넘의 손을 잡아 주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큰 넘이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큰 넘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우리 부부는 큰 넘을 부둥켜안았다. 작은 넘도 건너와서 형아, 잘못했어, 하며 큰 넘을 얼싸안는다.

참내, 사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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