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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Oct 18. 2024

미로 속을 돌고 돌며

2부/ 그렇게 세월의 강은 흐른다

밤 9시 40분.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켠다. 바탕화면이 나타난다.

즐겨찾기에서 <온라인 소설 창작 교실>로 들어간다. 일주일에 두 번, 전국의 문학도들이 온라인을 통해 공부하는 소설 창작 교실이다. 밤 10시에 시작하여 12시까지 공부한다. 작품에 따라서 1시를 넘길 때도 있다.

9시 50분이 되자 습작생들이 한두 명씩 들어온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 9시 55분, 전업 작가인 소설가 샘이 들어온다.


밤 10시. 드디어 수업이 시작된다.

오늘은 내 작품을 합평받는 날이다. 나는 긴장하며 어떤 글이 올라올지 화면을 응시한다.      

오늘 작품, 각자 읽은 소감들을 이야기해 보자.

샘의 글이 올라오자 습작생들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인물들이 선명하지 않다. 주제의 응집력이 없어 산만하다. 미친 여자 임지선은 작가가 억지로 꾸며 만들어 낸 듯 자연스럽지 않고 작위적이다. 할머니 얘기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백화점 대형 마트에서 카트에 물건을 대충대충 집어넣듯이 이야기들이나 삽화들이 훌떡훌떡 넘어간다. 처음의 긴장감과 흡인력이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황량한 벌판에 사냥감 하나가 던져지자 짐승들이 우, 하고 덤벼들어 서로 찢어발기고 물어뜯는 형국이다. 나는 찢긴 상처를 어루만질 새도 없이,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들의 비평 글이 모니터 화면에 숨이 차도록 올라온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면서 내 기분을 숨기고 차분하게 음…, 그랬군요. 제 실력 부족입니다.라고 응대한다.

아, 저…. 질문 있습니다. 화자를 어떤 인물로 설정했나요?
아, 예. 자유분방한 인물로요.
전혀 자유분방한 걸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 멋대로이고 미성숙한 여자처럼 보였어요. 여자의 승혁에 대한 사랑 방식도 그렇고. 그리고 정신병원에 가서 임지선에게 느끼는 화자의 감정 상태도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비난 일색이다. 이 작품은 꽝!이다. 그야말로 꽝!

소설가 샘마저도 이 작품의 실패 요인을 지적한다.

단편인데, 너무 많은 인물을 담았다. 삽화들이 주제와 연결고리도 없고. 처음의 추리 기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샘이 말했다.

이 작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제 감이 오지?

그리고 수업이 끝났다.

모두 나가고 난 텅 빈 방에 혼자 있다. 기분이 침울해진다. 정말로 소설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재능도 없는 자가 감히 소설 쓴답시고 달려들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뭐 그따위 생각들로 밤이 깊어간다.      

<소설 창작 교실>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습작생들의 작품을 합평한다.

작품을 내지 못하면 <소설 창작 교실>에서 나가야 한다. 무조건 한 달에 한 편은 올려야 한다.

합평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분석해야 한다. 작품을 분석하려면 꼼꼼히 읽고 또 읽고 뜻을 새겨가면서 읽어야 한다. 아쉬운 점이나 작품의 완성도면에서 더 추가되었으면 좋을 것 같은 얘기들을 메모한다. 이 삽화들이 개연성이 있는가, 인물들은 살아 있는가, 비문은 없는가, 작위적이지는 않는가, 등등.


나는 아침에 식구들이 다 나가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밥도 먹지 않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난다.  사실 이번 작품은 구성부터가 잘못됐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 아니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작품에 몰입을 하지 못했다. 유난히 힘든 작품이었다. 작품을 쓰다 보면 처음부터 술술 잘 풀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유난히 삐그덕 거리며 스트레스를 받는 작품도 있다. 이번 작품이 그랬다. 소설을 구상하고 줄거리와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의 성격, 말투, 행동들을 스케치하고 그 인물들이 다닐 장소들을 만들고 삽화를 만들긴 했다.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밀려둔 숙제를 하지 못한 것처럼 찜찜한 마음으로 시간이 흘렀다. 월요일부터 줄곧 학생들 논술 수업이 있었고, 어제는 제삿날이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머릿속은 어느 한순간도 소설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애를 태우다 보니, 며칠 전 꿈속에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 문장들이 차르륵차르륵 보이는 것이다. 나는 환호하며 그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맞아! 이거지. 그래, 하면서. 그런데 꿈을 깨고 나니 그 문장들은 물거품처럼 다 사라지고 내 기억 속에 남는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허망했다. 분명히 꿈속에서 문장들이 보였고, 난 그것을 주르륵주르륵 읽었는데 말이다. 꿈에 나타난 그 문장들은 어떤 무의식적인 강박에 의해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또렷하게 나는 그것을 읽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한 문장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오늘 합평받은 작품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갈 것인가. 헝클어진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수정을 하려면 더 힘들 것 같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고, 시계 소리만 째깍거리고 있다. 어떡해야 하나. 난 여태껏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몇 편의 소설을 썼지만 한 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두 다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계속해서 미로 속을 돌고 돌고 돌고 있다.


너는 아니야. 그만 때려치우지?

 

내 내면의 소리가 발끈한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거실을 서성인다. 블랙커피를 내려 한잔 마신다.

일단 포기하고 다시 쓰는 수밖에 없다. 오늘 작품은 버리자. 새로운 소재를 찾아서 줄거리와 인물을 다시 만들어야 다. 깊어가는 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밤도 하얗게 새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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