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까요.

by 다섯시의남자

걸을까요.



"미치지 않고서야..."

"정신 좀 차리지..."

걷기 계획을 잡다 보니 주변 반응이 신통찮다.


나도 생물학적 나이로 청춘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튀어 봤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 한결 쉬웠을지도 모른다. 원래 독특한 인간으로 살았더라면 다들 쉽게 수긍했을 거다. 하지만 줄곧 바른생활로 살았고, 항상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돈벌이나 노후대비는 자연스레 뒷전이 되었다.


포항 호미곶에서 문무대왕릉까지 걸을 생각을 했다. 50km다. 이틀 잡고 걷기에 알맞은 좋은 거리다. 바닥에 자전거 길이 표시되어 있어 헤매 일 일도 없다. 지난주 차로 슬쩍 둘러봤다. 바다도 파도도 구름도 딱 좋다. 지치면 쉴만한 곳에 멋진 카페도 줄지어 있다.

(그 외에도 비슷한 거리의 노선들을 열심히 기획했다.)

이런저런 걷기에 도전해 익숙해지고 나면 좀 더 멀리 걸으러 가 볼 계획이다.

울릉도 한 바퀴나 제주 올레길, 해파랑 길이나, 서해 섬마을 투어도 좋겠다.


이어서 생각나는 대로 막 적어 보자면.

동경의 야마노테센을 따라 한 바퀴 돌기

규슈 올레길 완주

몽골 초원 트레킹

장가계 일대를 걸어서 둘러보기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요거는 순전히 구색으로 넣었다. 사실 등산은 좀 힘들 것 같다)

근데 왜 걸으려는 것일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집에서 출발해 대구스타디움을 돌고 온다.(10km 조금 넘는 거리다)

피곤해서 포기하는 날도 있지만 일단 걷기 시작하면 축 처졌던 몸이 물먹은 상추마냥 되살아난다. 시작이 좋은 것이 있고, 끝이 좋은 것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드는 행위는 시작이 좋다. 달콤한 행동이다. 하지만 걷고 돌아와 소파에 앉으면 차원이 다른 행복감이 번진다.

걷는 가운데 머리가 맑아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지면서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가치 있게 느껴지게 된다. 뭐든 충분히 가능할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살아가다 시들만하면 또 걸어서 살을 붙이면 그것은 구체화되고 점점 현실화된다.

걷기는 내게 운동의 개념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걷는 행위 자체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길이 가진 치유의 힘을 느끼는 것이다. 길은 사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차별도 없고, 변덕스럽지도 않다. 묵묵히 우리의 사색들을 다 받아 준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역동적이며, 침묵과 함께 깊은 에너지를 간직하고 다시 돌려준다.

그래서 걸을수록 길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걷기는 나에게서 시작해 길에 대한 애착으로 전이되어 가는 것 같다.


골목투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골목이 주는 따스함은 유명 관광지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천천히 걷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실 내가 생각해 낸 문장은 아니다.

일본 규슈의 지방 도시인 ‘히타’에서 가져온 말이다.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을 가다 보면 중간쯤에 있는 도시다.

‘히타’가 가지고 있는 부제가 <히타 - 천천히 걷기>다.

작은 교토라고도 불릴 정도로 옛 도시의 거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중심부에 있는 ‘마메다 마치 거리’를 슬렁슬렁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걷고 싶은 길이 있고, 골목이 있고, 도시가 있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기쁨을 꾸준하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눌만한 가치 있는 길을 발견해 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누리고 싶다


‘우리 같이 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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