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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여행이야기

부산 - 시모노세키 부관페리(하마유 110호실)

심심한 여행이야기 

부산 - 시모노세키 부관페리(하마유 110호실)          



다인 실에 75세 되신 어르신이 끊임없이 얘기를 하고 있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는 바리톤보다 깊고 거칠다. 듣고 계신 분은 83세 되신 어르신이다. 두 분은 30분 전에 방에서 처음 만났고 나이가 더 많으신 어르신은 이따금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고, 짧게 답을 할 뿐이지만 75세 된 어르신은 그분 반응에 더욱 신이 났다. 목소리가 배 엔진의 진동과 함께 점점 빨라진다.     


여행 가방에 있던 귀마개(3M 제품)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여행용 가방에 언제부터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던 물건이다.

급기야 점잖게 구석에서 혼잣말만 하던 60세 정도 되신 분이 한마디 했다. 곱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참다 참다 한 말이라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화살처럼 날아가 찌른다. 상대를 잠시(5분 정도) 멈칫하게는 했지만 어르신은 다시 천천히,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노련미가 느껴졌다.

다행히 초저녁잠이 많으셔서 8시가 지나자 자리에 누우시고 정전이 이루어졌다.     


12인이 쓸 수 있는 다인 실(2등 실이라고 표기되어 있다)에서는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편하게 1인실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비싼 건 감당한다 치더라도 우연히 만나게 될 재밌는 상황을 포기하긴 어렵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다. 어쩌면 목적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누군가는 만나야 하고 내 맘대로 상대를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지혜롭게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인 실은 10시 30분에 강제 소등이 되었다.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찍 주무신 어르신은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깨셨다.(당연히 그러셨겠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집요하게 귀를 파고들어 깬 것도 아니고 안 깬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에서 다시 시작된 두 분의(사실 말은 한 분이 거의 하셨지만) 대화를 더 선명히 듣고 있었다.      


“청주가 고향이시라고요?”

“아. 저도 청주서 어릴 적에 살았었는데”

“그럼 연세가 어찌 되시는데요?”

“그래요? 저보다 형님이시네. 허허허”     


분명히 어젯밤에 다 했던 얘기들이다. 나도 알고 이 방 사람들뿐 아니라 옆방 사람들까지 다 알지도 모를 얘기를 새벽에 다시 시작하신다. 했던 얘기란 걸 잊으셨는지 아니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반복하시는 건지 알 수 없다. 설마 그러겠나 싶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했던 말을 반복할 때가 많다. 상대가 반응이 시원찮을수록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더러 조용하라고 얘기했던 아저씨는 밤새 할리데이비슨의 오토바이(오리지널 비전)보다 더 큰 소리로 코를 골았고 어르신들은 새벽부터 끝 모를 대화로 결국 나만 잠을 잘 수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여행 중이고, 잠이야 조금 부족해도 내일이 있으니 됐다.     


끝....

이라고 하려다 조금 더 현장 분위기를 설명해야겠다.

대욕탕은 6시 오픈이지만 그전에 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사용 중이다. 물을 받는 중이지만 샤워만 할 거라고 밀고 들어가셨다. 일부 어르신들은 5시부터 복도를 다니시며 일행들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하선 준비를 시작했다. 챙길게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30분째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고 있다. 이제 하룻밤 지냈을 뿐인데 말이다.      


새벽에 몇 번인가 깼다. 배는 이미 일본 내해에 접어들어 잔잔하게 운행 중이고 손에 닿을 듯 멀지 않은 육지가 어스름한 새벽빛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깰 때마다 시간을 확인하지만 생각보다 더디 간다. 

‘사서 고생’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게다가 나는 젊지도 않은데 말이다.



어르신들도 즐거운 여행이 되셨으면 좋겠다.     




* 아래 링크는 신간 『우리가 중년을 오해했다』 홍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blog.naver.com/damdanuri/22307434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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