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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여행이야기 2

시모노세키 가라토 시장 - 모지코레토르 - 우즈하우스

심심한 여행이야기 2

시모노세키 가라토 시장 - 모지코레토르 - 우즈하우스         


 

부관페리 ‘하마유’에서 내려 가라토 시장까지 걸어왔다. 25분쯤 걸렸다. 오는 길에 다섯 명한테 물어봤다. 

“가라토 시장 가려면 이쪽으로 쭉 가면 되나요?”

인터넷이 안 되니 배에서 가져온 듬성듬성 대충 캐릭터로 그려진 지도만으로는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장 1층을 쪽 둘러보고 2층 식당으로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곳이 몇 군데 없다. 바다전망이 잘 나오는 곳에 자리 잡고 이 가게 추천 메뉴인 ‘사시미 정식’을 시켰다. 장장 1985엔이나 한다. 지금까지 혼자 앉아서 이런 걸 시킨 적은 없었다. 보통 때라면 700엔짜리 조식 세트를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라토 시장까지 와서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바다를 보면서 ‘이번 여행, 아무 일정 없음’에 대해 생각했다. 살다 살다 이런 사치는 없을 것이다. 해외여행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냥 ‘심심한데 여행이나 가 볼까?’ 같은 느낌이다. 나대로는 대단한 계획이었다. 계획 없이 떠나는 것이 계획인. 뭔가 굉장한 결심이 수반된 그런 계획.     


10분쯤 바다를 따라가 게스트하우스인 ‘우즈하우스’에 짐을 맡겼다. 잠시 인터넷이 연결된 틈을 이용해 카톡도 확인했다. 1층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할까 하다 그냥 나왔다. 

다시 20분쯤 걸어가(너무 많이 걷는다. 신발도 크록스인데) ‘간몬 터널’로 갔다. 혼슈와 규슈를 이어주는 해저터널이다. 1937년에 계획하고 1958년 3월에 개통했다. 바다 밑을 780미터 ‘걸어서’ 혼슈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여기는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간몬 터널이 개통하던 때 지나가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수없이 규슈를 다녔지만 유독 여기는 인연이 없었다. 아버지는 만주로, 일본으로 17살 때부터 다니신 분이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기 터널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형제 중에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한다. 나 혼자 아버지를 닮았다. 얼마나 감사한지.

터널 중간에 혼슈와 규슈를 가르는 선이 우리네 분단선처럼 그어져 있다. 관광객들은 다들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      


규슈로 넘어가면 만나는 곳이 ‘모지코레토르’다. 내가 아는 일본의 도심지 중에서 제일 걷기 좋은 곳이다. 이국적이면서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즐비해 있다. 식당마다 야키 카레를 팔고 있고 또 바나나를 이용한 뭔가를 판다.(일본이 바나나를 대만에서 처음 수입 한 곳이 여기다.)     


야키 카레를 먹고 바닷가 나무 벤치에 앉아 있자니 잠이 실실 오는 게 아닌가. 하루쯤 못 잤다고 영향을 받을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맞다. 하루만 받았으면 다행이다. 

구석진 곳에 누워 30분쯤 잤다. 벤치에 누워 잔 건 처음이다. 오키나와에서 태풍이 올라온다고 해서인지 바람도 불고 약간 선선한 느낌에 깼다.(좀 더 잤으면 입 돌아갔을지도)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돌아왔다. 편도 400엔에 10분이면 도착한다.

4시 게스트하우스 체크인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한 시간 정도 자고 나서 정신을 챙겨 다시 나왔다.      


또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알게 된 것이 있다. 6시 넘으면 문을 연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 흔한 라멘집도 없고, 가라토 시장도 끝났고, 주변에 있는 식당가도 술집을 빼면 다 닫았다. 참 신기하네. 다들 임대료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그렇다고 낮에 북적이는 것도 아닌듯한데 말이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과일, 음료 하나 사서 바닷가 벤치에 또 앉았다. 오늘 유독 벤치랑 친하다.     


오고 가는 배들 구경하면서, 산책 시키는 강아지들 보면서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생각한다. 여기가 관광지이긴 한데 난 관광객은 아니다. 유명한 뭔가를 보고 다니지도 않는다. 

3000엔도 안 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빌 브라이슨’의 유럽 여행기나 읽으면서, 노트북이나 두드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일 저녁은 고베로 넘어간다. 12시간 이상 야간 페리를 탄다. 태풍이 어디쯤 있는지 모르겠지만 잠은 어제보다 잘 자게 될 것이다.(우리나라 어르신들은 절대 이걸 타지 않는다.)

고베 내리면 차이나타운이나 가 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 아래 링크는 신간 『우리가 중년을 오해했다』 홍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blog.naver.com/damdanuri/22307434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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