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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여행이야기 3

모지, 고쿠라, 그리고 야마토

심심한 여행이야기 3  

모지, 고쿠라, 그리고 야마토      


    

푹 잤다. 일찍 잠들었고, 일찍 일어났다. 푹 잤다는 건 편해졌다는 얘기다. 바닷길을 따라 뛰는 사람이 많다. 제법 연세가 있어 보이는 분도 멋진 운동복을 갖추고 뛴다. 여기는 동네 애들도 야구나 축구할 때 선수 복장을 제대로 챙긴다.      


이른 시간이라 버스가 다닐까 해서 로비에 앉아 버스 지나가는 걸 확인한다. 모지역으로 갈지 고쿠라역으로 갈지 고민 중이다. 한큐페리의 송영버스가 오후 5시 35분에 모지역 앞에서 출발한다.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돌아다니기엔 시끌벅적한 고쿠라역이 좋긴 하다.

일단 가면서 생각하자.     


퇴실하면서 보니 방명록 적는 공책이 있다. 뭔가 많이 적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간단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한글은 보이지 않는다.

군대 있을 때 휴가 나오면 교회로 곧장 가 청년부실에 있는 ‘공감 노트’(내가 갑자기 만든 말이다)를 뒤적여 보던 일이 생각난다.

요즘으로 치면 단톡이나 밴드 같은 것이다. 그동안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 읽고, 쓰고, 공감하며 시간의 간극을 좁혀 가곤 했다. 

몇 달 만에 글쓴이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 일주일 넘게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나, 여기 게스트하우스의 방명록처럼 누군가 읽어 줄지 모를 글을 쓰는 것과 같다.

질문만 던지면 바로 소설이라도 뚝딱 만들어 내는 현실에서 방명록은 이미 아득한 옛 시대의 물건이 된듯하다.     


세상이 자꾸 빨라진다.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정말 할 일이 없거나, 일부 철학자를 위한 사치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여행도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가 막 지나갔다. 방명록에 한 줄 적고 나간다.

“우즈하우스 덕분에 시모노세키가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지역에서 내렸다.

어차피 심심하려고 온 것이니 조용하고 낯선 모지역이 좋겠다 싶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나가는 남쪽 출구로 따라 나왔다. 무작정 걷다 보니 1시간을 걸었다. 발견한 거라곤 패밀리마트 2곳이 전부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요시노야 정도는 있으리라 믿었다(당연히). 스타벅스나 도토루 커피, 아니면 툴리스 커피 중 하나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당연히). - 이 세 군데는 무료 와이파이가 되고 충전기를 꽂을 수 있다. 참고로 일본은 식당 같은 데서 함부로 충전하면 혼난다.(점원이 달려와서 불이라도 지르는 걸 발견한 것처럼 깜짝 놀라면서 당황해한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 북쪽 출구 쪽으로 가 봤다. 그쪽은 더하다. 심지어 역 앞 택시 승강장에 택시도 한 대 없다. 

자판기에서 밀크티를 하나 뽑아 잠시 계획이란 걸 세워 봤다. 이제 겨우 아침 8시다. 동네 공원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까마귀와 나눠 먹으며 종일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결국 210엔이나 내고 고쿠라역으로 가는 표를 다시 샀다.     


예상대로 역에서 나오기도 전에 도투루, 스타벅스, 요시노야가 줄을 서 있다. 아케이드 상점가도 있고, 심지어 역 건물이 ‘아뮤 플라자’ 백화점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리버 워크’ 쇼핑몰이 있고, 오사카성이나 구마모토 성 같은 멋진 고쿠라 성(城)도 있다. 단가시장, 돈키호테까지 없는 게 없다. 오후 5시 35분까지 정신없이 다녀도 다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물론 바쁘게 다닐 생각은 절대 없지만.

이틀 시골에 있었다고 도시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래서 귀촌을 함부로 결정하면 안 되는 것이다(겨우 이틀 만에 대단한 통찰이다).     


스타벅스에서 오랜 시간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리라는 계획은 1시간도 못돼 무너졌다. 어찌나 추운지 1시간도 용케 견뎠다. 뛰쳐나갈 때까지 에어컨을 ‘잇빠이’ 켜 놓는 바람에 버틸 수 없었다. 분한 마음에 쇼핑몰에 가서 패딩이라도 사서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햇빛에 잘 달궈진 돌로 된 야외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엉덩이를 지지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몇 가지 실수가 있었다. 중고서점을 지나며 ‘들어가면 안 된다’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끌리듯 들어갔다. 안 그래도 무거워 죽겠을 판에 두꺼운 책을 두 권이나 들고나왔다. 로프트에서는 메모지와 펜을 사고(그나마 부피나 무게가 덜 나가는 걸로 골랐다) 유니클로에서 따뜻해 보이는 면 티셔츠를 몇 장 골랐다. 

다리도 아프고 돈도 없는데 가만있을 것이지 자꾸 기웃거리다 결국 이렇게 돼 버렸다.      


오늘의 교훈 : 유혹은 절대 이길 수 없다.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上策)이다.     


이제 무거운 배낭을 끌고 한큐페리 “야마토”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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