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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쓰텐카쿠의 초라한 전망대를 보면서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 양희은(1979)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이 노래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아마 많이 불렸으리라 생각한다. 박세리가 연못가에 떨어진 골프공을 쳐내기 위해 양말을 벗는 장면에서도 이 노래가 나왔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생각했던 사람도 있을 테고, 대학 시절 저항가요로 금지곡이 되었을 때도 목 놓아 불렀던 곡이다.     


그보다 나는 군대 훈련소에서의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한겨울 딱 죽기 직전까지 구르다 불렀다. 조교는 마치 레고를 가지고 놀 듯 모아놓고 뜬금없이 이 노래를 시켰다. 뭔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목적이었을까.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얼마나 서럽던지.     


그 노래를 종일 걷다 지쳐 잠시 앉았던 벤치에서 흥얼거리게 되었다. 햇살은 따뜻하고 한참 무료한 중에 무슨 짓을 해도 쳐다볼 사람 하나 없는 자유로운 이곳에서 난데없이 끝 모를 감성에 젖어버렸다.

여행 중에는 가끔 옛 생각이 나기도 한다. 장기 기억 속에 있던 기억들이 여행으로 인해 느슨해진 긴장의 틈을 비집고 올라온다.  



            

일본만 오면 옛날 생각이 자주 난다. 일본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다. 우체통 하나, 공중전화박스 하나, 심지어 시간당 아르바이트비조차 도무지 달라질 기미가 없다.     


『일본은 없다』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절,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 이후로 ‘~~가 보인다’ 시리즈가 나왔다 하면 팔리던 시절의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변한 게 없다.      


일본을 여행하는 중에는 자주 공허해지는 이유가 뭔가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들뜬 기분은 차분해지고 숙연해지고, 옛 추억의 감성에 젖어 자주 무기력해진다. 

여기 사람들은 점점 노인이 되어간다. 표정은 여전히 어둡고 친절한 종업원의 하이톤 뒤에 숨은 노곤함은 짙어간다. 그런 것들만 자꾸 보여진다. 한 때 신세계라 불렸던 혼도리 상점가 거리라서 유독 그렇다. 식당의 화려한 광고판에 속아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정작 한 골목만 돌아가면 옛 시절의 신세카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쓰텐카쿠의 초라한 전망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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