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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무엇을 남겼는가?

세상 심심한 여행이야기

여행은 무엇을 남겼는가?          



이번에 ‘세상 심심한 여행’을 떠나오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이유다. 객관적이지는 않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이제 정말 은퇴를 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다. 또 하나는 에세이를 출간하고 여행 작가(여행지에 대한 안내서라기보다는 여행의 재미를 추구하는 여전히 에세이지만)로서 출간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일주일의 시간을 비웠고, 많이는 아니지만 경비도 지출했다. 그래서 지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슬슬 정산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고민했던 것은 어찌 되어 있는지 나 또한 궁금하다. 전혀 바쁠 것 없는 일정에서 종일 걸은 것과, 메모하는 것과, 책 읽는 것과, 무료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시간들은 이번 여행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메모를 했다. 평소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살지만 그 생각들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 메모지에 옮기는 일은 분명 대단히 귀찮고 성가시고 그리고 위대한 일이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작은 노트를 사용했는데 크기도 적당하고 두께도 좋았다. 휴대폰 메모 창을 열어 두드리는 것보다는 실용적이었다. 왜냐하면 생각나는 대로 마구 날려 적은 메모는 속히 노트북으로 옮기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무슨 상황인지 곧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정리를 해야 했다. 휴대폰 메모 창도 대단히 좋은 것이지만 그대로 거기서 숙성되어가는 메모를 확인하는 일은 슬픈 일이다. 볼 때마다 직무태만을 지적받는 듯한 불편함이 따른다.

메모는 습관이다. 메모가 필요한 순간은 깊은 생각에 잠기거나 멍청하게 있다 뭔가가 팍 떠오르거나 둘 중 하나다. 그 찰나를 위해 메모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경험상 절대 잊어버릴 것 같지 않은 것일수록 바로 잊어버린다)     


걷기도 마찬가지다. 걷기 애찬을 하면서도 실제로 원하는 것만큼 걷지 못하고 지냈다. 

이번 여행 동안 하루 2만 보씩 걸었다. 나이키 95맥스를 신은 것도 아니고 집에서 신던 크록스에 양말도 신지 않은 채로 말이다.

계획대로라면(원래 계획이란 건 없었지만) 호텔 앞 200미터 정도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오뎅이나 몇 개 집어먹고 오는 정도로 조금만 걸을 작정이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한 건 머리가 나빠서라기보다는 한군데 오래 앉아 있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나마 걸을 때는 책을 본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풍경도 평소와 다르기에 창의적인 사고들이 간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운동 삼아 열심히 걸었다면 세 시간쯤 걸렸을 거리지만 크록스를 신고 게다가 무거운 배낭을 울러 메고 어슬렁거렸으니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을 빼면 종일 걸었다고 할 수 있겠다. 걷다 지칠 때까지 걸었다. 발바닥이 아프거나 어깨가 눌려 멈춰야 할 때는 커피를 마시거나(와이파이가 되는 곳이라면 감사하고)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서 지나는 사람들 구경을 했다. 

더 나이 들어 관절이 삐걱거리기 전에 열심히 걸어야겠다.     


이 밖에도 이번 여행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남겼다. 앞서 말했듯 꽉 채운 메모 노트와 이런저런 실행되기 어려운 상상과(모든 상상은 원래 실행되기 어렵게 시작된다), 뭔가를 꾸준히 열심히 해야겠다는 작은 결심들. 참 아직 청구되지 않은 카드 내역서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숙제를 남겼다. 애초에 여행의 목적을 이제 정리해야 한다.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끼워 맞추고 퍼즐을 완성하기까지 스스로 물음에 대한 답을 기록해야 한다. 실제로 여행 기간보다 더한 시간을 복기에 신경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 이번 여행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일상에서 여행을 꿈꾸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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