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머리.
“아빠 제발 그 상주머리 좀 어떻게 해봐. 염색도 좀 하고”
딸아이가 정색을 하고 윽박지른다.
이틀 전부터 잔소리를 해댔지만 별 반응이 없자 화가 난 듯하다.
아내도 거들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푹 파진 머리카락은 열흘만 지나면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좀 표시 난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다. 내가 공인도 아니고 청춘도 아니고 다른 신경 쓰이는 일이 수두룩하니 그깟 머리카락은 일도 아니다.(고 생각 한다)
딸아이가 ‘상주머리’라고 불러대니 ‘상주’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다.
경북 상주에 문상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처음 가는 곳이고 혼자 다녀와야 했다. 인사만 하고 돌아오면 되는 자리라 부담 없이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일찍 출발했다.
지도를 대충 검색해 시외버스 터미널 옆 골목에 차를 주차하고 걷기 시작했다.(나름 번화한 곳이라 추정되는 곳이었다) 일단 터미널 앞 큰 사거리를 중심으로 거리를 따라 네 방향으로 겹치지 않게 걸었다. 큰길을 접해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바로 뒤로는 단층의 오래된 주택이거나 상가였다. 추운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서인지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가로등에 붙은 상주곶감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만 신나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한 도시였다. 한 골목만 접어들면 시골 같은 풍경을 찾을 수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고 또 춥기도 해 길가에 있는 미장원으로 들어갔다.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잔뜩 심심한 얼굴을 하고 맞았다. 깔끔하게 정리만 부탁한다고 하고 앉았다. 찬찬히 둘러보니 꽤나 오래된 미장원이었다. 아주머니가 이발산가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아저씨가 자세를 잡았다. ‘간단히 정리’만 원했는데 좌우 밸런스가 맞지 않아 양쪽을 번갈아가며 자꾸 쳐올리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는 이 상황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의도치 않게 투블럭으로 잘려 나간 머리를 보면서 ‘아... 장례식장에 가야 하는데 어쩌지...’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드디어 긴 작업이 끝나고 머리를 감는데 아주머니 손길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오래된 가게 인테리어와는 사뭇 다른 서비스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왔다.
찬바람이 세차게 밀려나간 양쪽 머리 사이로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괜찮다. 이 정도 경험과 추억이면 그럭저럭 웃을만한 꺼리일 뿐이다.
어설프게 감다 만 머리를 급하게 해결해야 해서 골목을 뒤져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목욕탕 얘기는 더 하지 못하겠다.
‘상주’에 대해 개인적인 추억은 나쁘지 않지만 혹시 다른 이들이 오해할까 봐(상주시에 미안하기도 하고)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하자.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인천국제공항을 가는 리무진버스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듯한. 어느 지역이든 역이나 버스터미널, 공항 같은 곳은 정이 간다.
‘직장은 멀고 공항은 가깝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문상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상주도 운치 있었고, 머리도 나름 괜찮았다.(몇 명은 대놓고 웃었지만)
짧지만 멋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