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태백
지난여름 거센 장맛비 가운데 태백을 여행했었다. 태백산 하늘 전망대에 올랐고 아무도 없는 석탄 박물관을 혼자 구경했다. ‘시시한 책방’에서 책방지기와 차 한 잔 나누며 어릴 적 홍수가 났을 때 돼지가 떠내려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 주변에서 보냈다. 동네 미장원에 들러 이발도 하고 시장을 돌며 옥수수도 사고, 그렇게 첫 번째 태백여행을 조용히 마쳤다.
지난주 일기예보에 강원도에 큰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다시 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대구에도 어제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렸지만 하루 만에 사라졌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점심은 ‘황지자유시장’에서 국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나왔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조금 가다 다부터널을 지나니 멀리 설산이 보인다. 조금 더 달려 영주IC에서 내리니 도로 가장자리며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인도에 눈이 가득하다. 터널을 하나 더 지나자 갑자기 나타난 소백산 설산의 위용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터널을 지날 적마다 그림책을 넘기듯 풍경이 달라진다.
제설용으로 뿌려진 염화칼슘이 눈과 함께 도로로 흘러내렸다. 허연 물결무늬가 바닥에 끝없이 그려져 있다. 가장자리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흰색의 눈이 풀려 물감처럼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하다.
태백은 두 번째 방문이다. 겨울 태백은 처음이고.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책에서 읽은 이곳의 겨울 풍경은 오랫동안 기대해 왔던 연인과의 재회처럼 반갑다. 나는 새로운 곳도 좋지만 갔던 곳을 자꾸 가는 여행가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많은 도시를 얼마나 오래 여행했냐의 문제와는 다르다. 후쿠오카는 100번을 넘게 다녀왔지만 늘 새롭고, 여기 태백은 처음 만남부터 친근하다.
낯선 거리가 내게 던지는 질문을 좋아한다. 낯선 거리에서 스스로 묻게 되는 물음을 좋아한다. 그것은 장소나 기간을 넘어 내 여행의 중요한 의미가 된다.
어쩌다 보니 ‘태백산 눈 축제’ 기간이다. 태백산 하늘 전망대는 저 아래 도로에서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 가야한다. 전국에서 모인 관광버스가 주차장과 갓길을 이미 차지하고 있다. 질퍽질퍽해진 눈길을 처벅처벅 밟으며 올랐다. 인파에 떠밀려 어찌 봤는지 모르게 서둘러 찍고 내려왔다. 황지연못도 마찬가지다. 어제부터 시작된 축제는 토요일인 오늘이 하이라이트인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붐빈다. 지난여름에 묵었던 숙소는 축제 때문에 이미 만실이다. 이번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여행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좋다. 여기는 강원도 태백이고 지금은 겨울이다. 눈이 이렇게 쌓여있으니 그걸로 감사하다. 내일은 안쪽으로 한 골목 더 들어가면 된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낯선 골목을 또 기대하면 된다.
#낯선_거리_내게_말을_건다
#우리가_중년을_오해했다
#다섯_시의_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