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골목길
대구 칠성시장 옆에 신도극장이라고 있었다. 대구에서 살았던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곳이다. 그 극장 옆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어릴 적 살던 집이 나온다. 신기하게도 아직도 그대로 있다. 물론 세월을 맞아 거의 무너져 가고 있지만 옛 모습 그대로다.
대도시 한가운데 살았으니 고향이라 부르기엔 민망하지만 시골생활을 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어릴 적 살던 나의 고향이라면 늘 상 추억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다.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6살 이전부터다.
그렇게 넓게 느껴졌던 골목이었는데 지금 보니 자동차는 고사하고 자전거가 교행하기도 편하지 않은 골목이 되었다. 골목이 줄어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내가 그 정도로 덩치가 커진 것도 아닐 떼니 의식 속에서의 골목에 대한 환상과 어릴 적 놀던 추억이 과장되고 미화되어 시절을 꺼내 볼 때마다 조금씩 부풀려졌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은 집 바로 뒤로 아파트가 아득하니 절벽처럼 자리하고 있고 골목을 벗어나면 온갖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번화한 곳이 되어 있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출입문처럼 이 골목 입구는 옛날 그대로 여전한데 나에게만 보이는지 출입하는 사람이 없다.
재개발이 활발하던 시절 순순히 도장을 찍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팅기다 결국 소외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이 도심 한가운데서 이런 골목 안에 쓰러질 듯한 주택 몇 채만 남았을 리 없다.
제법 단단했던 기와집이었는데 지붕은 기와 위로 방수포가 몇 겹이고 덮어져 있고 평상을 펴고 놀던 마당은 어찌 이리 물품 없어진 건지. 아쉽다가도 슬퍼진다.
여기가 고향은 아니겠지만 기억의 시작이 이곳이기에, 어릴 적 생각나는 고향 동무라면 당연히 여기서 어울렸던 그들이었다. 아스팔트 킨트 Asphalt Kind(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회지의 고향 없는 아이들)라는 말처럼 무슨 아파트나 무슨 병원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고향’이라는 말의 뜻을 모를 것이다. ‘마을’의 개념도 희미해진 요즘 고향의 그리움이나 추억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고향 친구도 당연히 없을 테고.
마음의 고향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입시를 향한 끝나지 않는 경쟁만 있을 뿐, 꿈꾸는 유년기는 없다. 둘만의 비밀을 간직했던 동무도 없다. 그것은 어린이지만 어린이가 아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그렇다. 시대가 부도덕한 것이다.
가끔 신도극장 뒤의 그 집이 궁금할 때가 있다. 정신없이 바쁘다가 문득 현실을 도피하고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고향의 골목은 치유의 힘이 있는 듯하다. 왠지 그런 믿음이 간다. 유년기의 추억은 현재의 현실을 이상적으로 희석시키는 마법이 있다.
‘그랬지, 그 친구가 있었지, 그런 꿈이 있었지.’
그러다 금방 다시 돌아와 급하게 달리고 있는 레일 위로 뛰어들겠지만, 그래도 잠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위안이라 자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낯선_거리_내게_말을_건다
#우리가_중년을_오해했다
#다섯_시의_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