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적을 대하는 태도
얼마 전에 이병률 작가의 신간 발매 소식을 들었다.(「좋아서 그래」 2025.10.29. 출판사 ‘달’)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기다리기로 했다. 여기 마닐라에서 찾아봤자 소용도 없거니와 그보다 시간이 좀 지나면 중고서점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출간한 작가로서 중고서점에 책이 나오기를 기다린 다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란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중고서적(정확히는 누군가 먼저 읽었던 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같은 독자로서 먼저 책을 읽었던 사람에 대한 동지애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읽었던 흔적과 줄친 부분, 거기에 간단한 메모까지 있다면 금광 지역에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다 문뜩 작은 결정 하나를 발견한 것처럼 정말이지 신나는 일일 것이다. “우와 이 글에서 같은 감동을 받았다는 거야? 누군지 상당히 궁금하네” 같은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다.
책을 깨끗하게 읽는 분도 있겠지만 나처럼 좋은 글을 만나면 줄을 치고 메모를 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글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누군가 먼저 그 일을 했던 것을 발견하고 그 글에 나도 상당 부분 동의가 될 때 책 읽기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SNS에 올라온 책 리뷰 같은 것에서 정리된 글을 보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간혹 내가 줄친 부분 중에서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어라, 여기를 왜 줄친 거야’싶은 부분도 있다. 그리고 새롭게 와닿는 부분도 있어 ‘이걸 그냥 읽고 넘어갔단 말이야?’ 싶은 곳도 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읽었느냐에 따라 글에 대한 감동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작가는 책을 여러 번 읽었을 때 비로써 작가의 의도를 발견하게끔 보물을 숨겨 두는 경우도 있다(숨겨 두었다기보다는 독자의 독서력에 따라 발견되는 시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겠지만)
좀 다른 얘기이긴 한데, 자신의 책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봤다.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는 신기함 정도였던 것 같다. 처음 발간했던 「다섯 시의 남자」(2021년 9월 ‘담다 출판사’발행)의 경우 대구 동성로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는 잠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반가웠다. 내 책이 ‘유통’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안도감도 들었다. 두 번째 마음은 조금 섭섭함이다. 그냥 간직할 만한 가치로는 판단되지 않는다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 계산하고 들고나왔다. 서점에서 내 책을 찾아보는 일은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일이다. 편 매대에 누워있다면 감사할 일이지만(발간하자마자 잠시는 누워있다^^) 대부분 책장에 꽂혀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책이 누워있어야지 일어서는 순간 끝이다’라고 누군가 얘기했는데 슬프게도 내 책은 대부분 ‘일어서’ 있다. 그래도 서점에서 발견하면 살며시 앞으로 좀 당겨 놓는다. 너무 많이 당기면 직원들이 눈치채니 살며시 조금만...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를 읽고 있다. 1999년도에 발행된 것으로 상당히 오래된 책이다. 책장 정리를 여러 번 했지만 하루키 작가의 책은 정리하지 않고 모아 둔 덕분에 아직 가지고 있다. 세 번째 읽는 것인데 다시 보니 낯선 문장들이 또 많다. 아마도 내가 여행 작가의 시선으로 읽다 보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지 않나 싶다.
1년 살기로 여기 필리핀을 여행 중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여행 중에 또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 참. 오늘 담다 출판사의 신간 「괜찮은 하루」가 집으로 배송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참여한 작가에게 저자본으로 5권씩 보내 준 것이다.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설레는 경험이다.
#괜찮은_하루
#다섯_시의_남자
#낯선_거리_내게_말을_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