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산책 (추억으로의 걷기 여행)

by 다섯시의남자

골목 산책 (추억으로의 걷기 여행)



*** 6살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던 집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그곳에서 내 기억이 시작된다.

신암동 신도극장이 있던 자리 뒷동네. 미로 같은 골목들이 신기하게도 아직 남아 있었다.


지금은 그냥 좁은 골목길이지만 그때는 얼마나 넓은 놀이터였는지. 달라진 걸 발견할 만큼의 기억이 생생하지는 않지만,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그 시절의 냄새가 아련하다.


반가운 마음보다 애처로움이 더한다. 아파트 빌딩에 둘러싸여 하늘은 마치 우물 안에서 올려 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밀집한 거리에서 한 블록만 들어오면 50년 넘게 그대로인 것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너무 초라하다. 도저히 수리 불가능한 상태의 집들이 가슴 아프게 잊혀 져 있을 뿐이었다.


골목에 홀로 나와 계신 할아버지는 이 동네서 오랫동안 사셨다고 한다. 같은 시절을 한 공간에서 보냈으리라는 짐작만으로도 마음이 가까워진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으신지 길게 대답이 없으시다. 짧게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기억나는 골목 친구가 두 명 있다. 옆집에 사는 빵 공장 집 아들과 골목 입구에 살던 친구다.

빵 공장 집 아들은 그 시절에 유치원을 다녔다. 한 번 따라갔다가 들어가지도 못한 채 마당에 있는 그네만 타다 돌아온 기억이 난다. 환경이 너무 달라 부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끔 식빵을 자르고 남은 가장자리 부분을 한가득 얻어먹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또 한 친구의 추억은 아주 짧은 순간이다. 바나나를 들고 대문 앞에서 우쭐대던 모습이었다. 한입 얻어먹었지만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어차피 그 시절의 바나나는 맛과 상관없이 귀한 것이었다.


골목을 나와 큰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칠성시장이다. 조금 가다 보면 다리가 나온다. 당시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살고 있었다. 차도와 인도 사이 벌어진 틈으로 움막이 보였다. 간혹 아이들이 나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어른들이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놀리곤 했는데 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많은 추억이 있었던 그곳은 재개발이 한창이다.


아직도 옛 골목은 남아 있었다. 바로 옆에까지 개발이 되고 도로가 넓혀졌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20여 채는 옛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간직되었다고 해서 의미가 있다거나 가치가 있는 모습은 아니다. 아마도 보상가가 맞지 않아 버티다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어릴 적 살던 집이 그 안에 있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건넛방이 보였다. 작은형이 일 때문에 타지로 가는 바람에 생긴 내 방이었다. 책상 하나에 작은 옷장 하나 들어가고 나면 둘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정도였지만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었다.

오 형제의 막내였지만 작은형을 제외하면 다들 일찍 결혼을 했고, 그나마 작은형도 일하러 타지로 나가서 혼자 외동처럼 자랐다.


경북대학교 정문으로 들어가 우측으로 가다 보면 친구들과 놀던 곳이 나온다. 블록으로 쌓은 대학교 담을 구멍을 내 사다리처럼 밟고 들락거렸다.

6학년 때였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고 해서 경대에 들어가 어린 소나무를 톱으로 베어서 나왔다. 담을 넘어오는데 마침 쓰레기차가 올 시간이라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다. 나무를 둘러메고 담을 넘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파티 준비가 너무 일찍 끝났다. 나름 장식을 하고 과자며 음료 준비도 끝내고 케이크까지 초를 꽂고 준비했지만 겨우 3시도 안된 시간이었다. 해가 지고 나면 시작하자고 하고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한 친구가 케이크 위에 장식해 둔 체리를 무심한 듯 따 먹었다. 그게 신호가 되어 초에 불도 붙이지 않고 캐럴송도 없이 5분 만에 파티가 끝나버렸다.

그렇게 내 첫 번째 크리스마스 파티가 지나갔다.



*** 혼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말이 없고 친구들과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람의 언덕’(동구청 뒤 선열공원을 나는 그렇게 불렀다) 옆으로 이사를 왔다.

금호강이 보이는 언덕 위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고 기타를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지금은 선열공원이 ‘국립 신암선열공원’으로 지정되어 잘 정비되어 있다.)

시간 나는 대로 언덕을 올랐다.

신기했던 건 군대 근무 시절 내가 있던 초소에서 이 언덕이 보였다는 거다.(대구 비행장에서 공군으로 근무했다) 집이 가까워 다들 편하게 군대 생활한다고 했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곳을 가지 못하는 절망이 오히려 더 슬펐다.

내가 살던 집은 재개발로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주변도 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그 언덕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있거나, 그저 말도 안 되는 공상에 빠진 채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린 청춘의 날들이 흘렀다.



*** 마음먹고 걸었다. 상념(想念)들이 불꽃처럼 일었다.

걸으면서 철없이 지낸 골목들을 보았다.

그 골목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기억이란 것이 생각할 때마다 희미한 기초 위에 집을 짓듯 새롭게 각색되고 변하게 돼, 결국은 처음 사실과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되거나 아니면 돌아보기조차 싫어 깊은 내면에 던져두고 말게 된다.

어디까지 사실일지 과장일지 장담할 수 없다. 기억의 저편에서 넘어올 때 얼마나 소설처럼 창

작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들 속에서 내 자아가 생겨나고 아파하고 다듬어졌으리라.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멀지도 않은 곳이다.

잠시만 시간을 내면 차로 쓱 돌아볼 수 있다.

충분히 가슴이 흥분할 시간을 가지고, 긴 시간 걸었다.

행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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