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글쓰기
‘고쳐쓰기’를 하면서 걱정스러운 것이 생겼다.
막 쓰기를 하고 퇴고 과정에서 글을 고치는 건 이해가 되지만, 너무 많이 고치고 다듬다 보니 글이 자꾸 둥글어진다.
아무리 어설퍼도 나름 글의 색깔이란 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무뎌진다. 날것의 느낌이 없어져 버린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생각해도 “이건 내가 쓴 글이네”라는 색깔이 조금씩 보인다. 그런 것들이 퇴고 과정에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고 잘려 나간다. 도전적인 단어가 평이한 표현으로 바뀌게 되고, 앞뒤 혹은 전 후반부의 나름의 배치가 내 처음 의도와 다르게 다시 조율되기도 한다. 생각이 너무 많다 보니 그렇게 된다.
영화도 두 번 볼 때 발견되는 메시지가 있듯이, 두 번 읽었을 때 제 맛이 나는 글이 있다. 물론 쉽게 쓰고 단문으로 편하게 읽히는 글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가끔은 바로 이해되는 글보다는 “어, 이거 이런 뜻이 있었어?” 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나만 이해한 건 아니겠지’ 싶은, 난해하지만 알고 나면 꽤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쓰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처럼 마치 번역한 글처럼 쓰는 작가도 있다.(평론가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딴죽 걸지 않는다.
김훈 작가의 글은 나로서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많았다. 어떤 것은 여러 번 읽고 깊이 생각해 봐야 알 수 있는 문장도 있었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고 느낄 때의 쾌감은 독서의 재미를 상승시킨다.
나는 아직 내 문체란 게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 버릇과, 잘못된 어휘의 사용이 마치 내 특기라도 되는 양 여길 수도 있지만,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바른 표현과 문장을 익히고, 기초 드로잉을 연습하듯이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서 정확한 표현에 대해서 익혀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나만의 문장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공장에서 찍어 낸 듯한 글이 아니라 거칠지만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어 꿈틀거리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은 계속해서 쓸 것이다. 글쓰기에서만큼은 아직 청춘이다. 계산하지 않고 결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은 방향을 잡기보다는 체력을 길러야 할 시기니깐. 마구 쓰기를 하고 필사도 하면서 근육을 키워 나가야겠다. 나만의 문체라든가, 살아있는 글이라든가 하는 말은 ‘진짜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스케이트를 처음 신으면서 트리플 액셀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잡념은 이제 그만두고 질풍노도의 시기처럼 일단 마구 써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