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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가닥 루시

왈가닥 루시          



미국 시트콤인 ‘왈가닥 루시(I love Lucy)’의 한 장면이다. 

남편 리키가 집에 들어와 보니 루시가 거실 바닥을 이 잡듯 기어 다니고 있었다. 리키가 루시에게 도대체 무얼 하는지 물었더니 귀걸이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거실에서 잃어버린 거야?” 하자 루시는 “아니, 침실에서 잃어버렸어. 그런데 거기보다는 여기가 훨씬 밝아서” 하는 것이다.     


‘루시’의 이야기지만 내 얘기기도 하다.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결과에 상관없이 자기만족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왜 이렇게 된 거지?’ 깨닫게 되고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 결말이 뻔하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가고 또 몇 년이 지났다. 마흔 즈음에 하던 고민을 반성 없이 지금도 하고 있다. 여전히 후반전 인생이 남았다고 얘기하고, 여전히 앞으로 오십 년 밖에 못 살 거라고 농담을 하고 다닌다. 육십이 되어서도 의술이 더 좋아져 아직 오십 년은 남았다고 떠들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은 하고 있는 걸까? ‘루시’처럼 하던 일에 그저 생각 없이 열중하며 만족하고 살 것인가?     


나도 곧 아버지가 은퇴하셨던 그 나이가 된다. 세월이 참 빠르다. 그 시절 아버지는 지금 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더 많은 짐을 지고 사셨던 것 같다. 참 어른이셨고 흔들림이 없으셨지만 당신의 고민은 지금 나보다 더 깊고 넓으셨으리라 짐작된다.

나는 아직도 ‘왜 이렇게 철이 없나’ 가끔 한탄하곤 하는데 이건 나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버지 시대와 환경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다고 위로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나이만 중년이지 여전히 청춘의 호기심과 방황을 버리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아버지 시절보다 훨씬 오래 살아야 하고 은퇴 후의 시간도 엄청나게 길 텐데, 빨리 철이 들고 바른 생활만 하다가는 남은 인생을 시시하게 보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엔 세월이 너무 많이 남았다. 

우리 시절에는 까칠하게 사춘기를 보낸 이가 별로 없었다. 어른들이 지금처럼 받아 주지도 않았을뿐더러 다들 철이 너무 빨리 들었던 환경이었다. 다행히 지금이라도 늦은 사춘기도 보내고 청춘처럼 방황도 하고 그렇게 살아봐도 좋을만한 시절이다.

대출금 상환이나 자녀 결혼 문제들에 묶여 이번 기회마저 날려 버린다면 정말 후회만 남을 것이다.     


내 인생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 애쓰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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