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바다로 나갈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아.

바다로 나갈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아.    


      

배를 타거나 야간열차나 버스를 타거나, 이동 수단 자체가 여행인 것이 있다. 간혹 목적지와 상관없이 그 수단만을 기대하며 떠날 때도 있다.

베트남에서 긴 내륙을 이동하기는 침대버스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 나는 그 버스를 타기 위해 굳이 꼭 보고 싶지 않은 도시까지 여행을 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르쿠츠크의 멋진 건축물이나 바이칼 호수를 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순전히 그 열차를 타기 위해 러시아 여행을 했다. 일본의 페리도 그렇다. 신칸센으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0시간 넘게 페리를 타고 간다. 그것 때문에 그쪽으로 일정을 잡기도 했다. 드라이브도 좋다. 해안도로든 단풍이 멋진 산길이든 시골의 정겨운 풍경이든 중요한 것은 어딘가로 가고 있고 그 길이 내 마음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중에 유독 배를 좋아한다. 배를 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리고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찮은 일상에 활력이 인다. 인생의 쉼표와도 같다. ‘불멍’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멍’이 유행이었다. 배를 타면 프로펠러를 통해 밀려 나오는 물살을 한참이고 바라본다.(물멍이라고 해야 하나, 물결멍? 파도멍?) 고요한 바다 가운데서 오로지 내뿜어지는 물살과 하얀 거품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집요하게 괴롭히던 문제가 별일 아닌 것처럼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도 된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여름휴가 때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 볼까 했다가 좌절했다. 자리가 없었다. 울릉도는 태풍이나 멀미가 걱정이고, 일본을 가자니 코로나로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

어디라도 좋다. 배를 타고 밤바다 한가운데로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검은 바다에 서서 하늘을 보고, 별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목적지는 모르겠고, 바다 한가운데를 지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어디를 가든 상관없다는 심정이다.     


간혹 이동 수단만으로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가 있는 걸 보면 나만 이런 취향인 건 아닌 것 같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분야도 있다. 마트에서 시식행사를 하는 것과 같다. 맛을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다는 걸 알게 되고 구매로 이어지게 된다.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경험한 것은 그냥 들어서 아는 것과 다른 힘이 있다. 진짜 알아가는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사색에 빠져보는 즐거움을 경험해 보기 바란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서 새로운 경험에 도전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배 타고 지구 한 바퀴’ 정도 꿈꿔 보면 어떨까? 생각하다 보면 지구 한 바퀴는 어렵더라도 하룻밤은 쉽게 해볼 수 있지 않겠나. 배에서 아침을 맞고 저녁노을을 즐기고, 오래도록 ‘물멍’을 해 보는 거다. 상상만으로 멋진 계획이다.     


혹시 실패해 봐야 어쩌겠어?

어차피 추억은 남게 될 테니 그것으로 된 거다.



작가의 이전글 왈가닥 루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