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재료 싸움이다.

by 다섯시의남자

결국은 재료 싸움이다.


요즘 기록에 관한 정보를 많이 본다. 여태까지는 기록 얘기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파마하러 가는 날은 온통 여자들 파마머리밖에 안 보인다고 한 것처럼 나도 기록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계속 기록의 당위성만 보인다.

이승희 작가의 ‘마케터의 노트’라는 강의를 들었다. 시작부터 예상치도 못한 얘기를 들었다. 자기한테 맞는 펜과 노트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사는 메모용 노트를 주문 제작해서 쓰고 있었다. 딱 맞는 질감과 사이즈가 필기를 즐기게끔 한다고 했다. 펜도 브랜드와 굵기까지 정해서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쓰는 펜은 삼색 볼펜으로 굵기도 그렇고 필기감도 별로인 것을 쓰고 있었다. 강의 중간에 멈추고 다이소로 달려갔다. 역시나 다이소에서는 다이소만 한 것만 준비되어 있었다.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고 뭐라도 움직였다는 건 좋은 경험이다. 경험이 쌓이면 길이 만들어 지고 방향이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은 없지만 부지런히 수집하고 기록하고, 그것을 공유하려는 의식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 열심을 내는 것이 기록하는 일이다. 다이소에서 펜과 노트는 사지 않았지만 얇고 간편한 메모지를 샀다. 두개 천 원이라는 실패해도 아깝지 않은 비용을 들였다. 실패라고 했지만 사실 기록에는 실패가 없다고 생각한다. 무수한 생각들을 잠시 잡아 두는 것만으로 목적은 이미 이루었다. 다시 기록을 뒤적이며 영감을 얻으면 좋겠지만 잊어버려도 된다. 한 번 적는 행위로 얻는 유익이 있으니깐. 또 영감이란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이 반복될 때 촘촘한 그물처럼 더 잘 걸러지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기록할 만한 장비를 분산해 두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 하찮게 바라보는 태도만 있을 뿐’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히 옳은 말이다. 휴대폰 메모장에 어떤 상황에서 적은 건지도 모를 간단한 한 줄 메모를 유심히 바라볼 때가 있다. 지나가는 생각을 급하게 적은 것이니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별 감동이 없다. 하지만 반복해서 생각을 곱씹다 보면 글이 보여주지 않은 윤곽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가 있다. 처음 메모할 때 느낀 것과 같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짧은 메모에서 새 길이 보이기도 한다. 마치 산을 오르다 이전에 몰랐을 작은 오솔길을 발견하는 것처럼.


기록은 질문을 만든다. 아니면 좋은 질문을 위해 기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을 통해 내 의견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전보다 좀 더 좋은 삶을 살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요리 실력이 비슷한 요리사라면 신선하고 좋은 재료가 음식의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타고난 재능이 있을 리도 없는 사람은 결국 좋은 재료를 많이 모으는 것이 좋은 음식을 만드는 비법이 된다.


주말에는 펜을 사러 나가야겠다. 잡고 있으면 뭔가 써 보고 싶고 평상시에도 들고 다니고 싶은 멋진 펜을 만나게 되면 좋겠다. 그 펜을 통해 생각의 크기가 확장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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