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
진행을 맡은 선생님이 두 번이나 강조했다.
“아버님 생각보다 빨리 뛰기 어렵습니다. 천천히 달리셔야 해요.”
몇몇 남자들이 의욕적으로 나갔다. 종일 미적미적 뒷전에서 구경만 하던 아빠들이다.
운동회의 꽃 아빠들의 계주 시간이 된 것이다.
한조에 한두 명씩은 꼭 넘어진다. 발보다 팔이 먼저 나가고 그보다 생각이 먼저 앞선 것이다. 꼬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슬로비디오로 자신이 넘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바로 벌떡 일어서지만 생각보다 내상이 깊다.
그래봐야 40대 젊은 아빠들인데 어쩌면 저렇게 몸이 따라가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산책하다 ‘전력 질주’를 해 본 적이 있다. 놀라운 것은 이를 악물고 달리는데도 별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것과, 숨이 차서 도저히 달리기 힘들 때까지 달렸지만 실제로는 얼마 못 갔다는 것이다. 거친 숨은 평온해질 기미가 없고, 넘어지지 않은 게 너무 감사할 만큼 불안불안했던 것을 스스로 느꼈다. 걷다가 가볍게 달리기를 반복하는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음도 매한가지다. 자신은 젊은 시절에 비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유연한 사고와 포용력, 이해력이 충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강할수록 꼰대일 가능성이 크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에 대한 기준을 다시 잡아야 하듯 마음도 다시 먹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나이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은 동네 앞산 정도는 뛰어서 넘고도 남을 만큼 팔팔한데 체력의 현실은 당황스럽다.
운동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마음과 몸, 그리고 관계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노년에 대해 어느 시인이 이렇게 표현했다.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리라’
아름답게 늙어갈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