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다시 쓰기.

by 다섯시의남자

인생, 다시 쓰기.



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부치고 나면 우체부 아저씨가 답장을 들고 오기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했었다. 군대 있을 때 저녁 점호가 끝나고 전달되는 편지는 가슴이 꿍꽝거려 주체가 안 될 만큼 흥분시켰다. 화장실에 앉아 몇 번을 읽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혈을 기울여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연애편지를 쓴다. 물론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도저히 보내지 못한다. 내가 봐도 오골 거린다. 고쳐쓰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서야 고이 접어 우체통에 넣는다. 그리고 또 기다림의 연속이 된다.


분명 어젯밤에는 완벽한 표현이었는데 아침이 되면 느낌이 달라져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매번 느끼는 감정이다. 이대로는 도저히 책을 내기 어렵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고는 다시 고민하고 고치고 그리고 또 용기를 낸다.

글 내용을 묵상하고,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깊이 고민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 한 글이 뚝 튀어나올 때가 있다. 반면 너무 멋진 표현이었지만 문맥상 잘라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렇게 글이 정리되고, 생각이 정리되면서 덩달아 내 마음도 깊어지게 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계획하는 일은 힘들다. 순조롭게 술술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한 작업의 연속이고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무의미한 반복을 묵묵히 이어가는 일이다. 누구라도 순탄한 인생이란 없다. 그런 인생은 소설 속에서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그저 살았을 것 같은 인생도 들여다보면 수많은 주름과 상처와 패인 옹이가 보인다. 저기서 힘들었겠구나 싶어 마음이 동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의 세월을 둘러보면서 위로를 얻는다. ‘모두 힘든 인생이었구나, 나도 다시 힘을 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인생도 편지 쓰기처럼 자고 일어나 보면 후회되기도 하고, 실수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고쳐 쓰기를 하듯 시작하면 된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고 선생님도 그랬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고 선생이 되어보니 알겠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다시 시작했듯 나도, 우리도 다시 쓰면 된다. 그래도 된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언니와 생일이 비슷한 덕선이는 매년 케이크 한 개를 사서 언니의 생일을 축하한 후, 초를 몇 개 빼고 다시 덕선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울면서 소리친다.


“내가 내 생일 케이크 따로 준비해 달라고 했잖아?”

“왜 언니랑 동생은 닭 다리를 먹고, 나만 날개를 줘?”

“왜 언니와 동생은 계란 프라이를 주고, 나는 콩자반만 주는데?”

“왜 언니 이름은 보라고, 동생은 노을인데, 내 이름만 덕선이냐고?”


소리 지르는 덕선이를 보며 아빠는 야단치지 않았다. 케이크를 다시 준비해서 덕선이의 나이만큼 초를 꽂고 생일 축하를 해 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덕선아! 아빠 엄마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아.”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었잖아. 아빠 엄마 좀 봐줘.”

“우리 딸, 언제 이렇게 예쁘게 커서 아가씨가 되었니?”


그 장면을 생각만 해도 또 눈물이 찔끔 난다. 아빠도 처음이라는 말. 나도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오늘도 처음이다. 그저 지나가는 날이 아니다. 다시 마음먹으면 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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