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한 잔 부탁합니다.
다들 아이스를 시키니 나도 같은 걸로 달라고 했다. 사실 차가운 건 싫다. 날도 추운데 냉커피라니... 그래도 통일해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겠지. 이상한 걸 시키면 날 별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안되지. 같이 가야지.’
사실 커피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예전에 커피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믹스커피를 마셨다.
인생도 이렇게 살았다. 취향 같은 걸 꼼꼼히 따지지 않는 게 미덕이었다. ‘같이 하는 게 중요하지’,라는 말도 안 되는 동지의식을 정당하게 생각했다. 주변 사람 대부분이 이런 나를 좋아했다. 가끔 안 맞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맞춰주려고 무지 노력했다. 그런 사고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어이없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똑바로 보았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글로 정리해 보니 평범하다 생각했던 사고가 가끔 황당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근데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까칠하고 이기적이라 생각했던 이도 다른 사람 눈치를 봤다. 자기가 좋아서 저러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거였다. 좋은 차를 타거나 명품 옷이나 시계를 차는데도 그런 이유가 작용했다.
다낭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분을 만났었다. 시장에서 산 티셔츠를 입고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자기 생활에 아주 만족해 했다. 한국에서는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눈치 볼 사람도 없고 몇몇 알게 된 교민들도 비슷하게 해 다니기 때문에 상관이 없단다. 다시 한국 들어오면 전보다 조금은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따뜻하게 시키는 사람은 물론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바로 표현하는 것을 머뭇거린다. 혼자서 뭔가를 한다는 걸 어색해하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나, 혼자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심지어 사업을 하면서도 혼자서 결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면 친구의 존재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지만 그럴수록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단체생활도 잘한다. 자기를 스스로 존중해야 남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메리카노보다는 달달한 라떼가 좋다. 뻑뻑한 율무도 좋고, 쌍화차도 좋다. 사실 커피 말고 좋아하는 게 많다.
오늘은 정말 원하는 걸로 눈치 보지 말고 먼저 주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