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 웨이(gangway)를 사이에 두고.
‘드디어’ 배에 올랐던 그 순간처럼, ‘드디어’ 견고한 땅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긴 배 여행 때문인지 흔들리지 않는 땅이 오히려 생경하다. 발바닥이 고정되니 남아 있는 진동을 온전히 몸이 받아내고 있다. 위태한 밸런스에 잠시 긴장한다. 5분 정도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잊히겠지.
2주간 여행하는 동안 절반을 배에서 보냈다. 보이는 것이라곤 눈부신 한낮의 바다와 까만 밤의 바다, 간혹 만나는 배들과 멀리 아스라한 육지. 그리고 긴 여정을 흔들림 없이 내려다보는 하늘뿐이다. 심심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려고 배를 탄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무료함은 길었다.
어느 순간이 되니 사면의 바다가 다른 표정이란 걸 알았다. 똑같아 보이는 파도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변의 복잡한 상황들에서 단절되어 보니 생각은 단순해지고 감각은 섬세해진다. 그리고 차츰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책으로 한낮의 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글자는 읽히지 않고 눈은 종이 위 햇빛에 가 있다. 글씨들이 흩어지고 모이며 다른 말들을 쏟아 낸다.
‘이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이곳에 있으면서 벌써 이곳이 그리워진다.
여행은 추억 속에서 더 아름다워진다. 놓쳤던 순간은 예고 없이 문득 떠오른다. 스치는 음악과 냄새와, 풍경 어느 한 조각에서 시선이 놓치고 지나간 그곳의 추억이 소환되고 살아난다. 그리고 늦은 감동이 여행을 아름답게 추억하게 한다.
삶과 여행 사이에 ‘갱 웨이(gangway)’가 있다. 배에 오르는 것과 내리는 것 중 어느 것이 여행의 시작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각자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어디에 있든 여행자의 신분이라는 것이다.
양손에 짐 가방을 든 여행객들이 ‘갱 웨이(gangway·육지와 배를 잇는 트랩)’에 길게 늘어섰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