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친구
친구가 시시하다는 게 아니라 시시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얘기를 하려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진지한 얘기만 하게 된다. 간혹 옛날 친구들을 만나도 뭔가 정보가 될 만한 얘기를 나누어야 할 것만 같다. 정치 얘기며 자녀 얘기, 부모님이나 노후문제 등 주제는 뻔하다. 거기에 맞는 참신한 제안이나 정보가 없으면 무익한 시간으로 여겨지기 쉽고 길어지면 모임 자체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접게 된다.
항상 신경 써야 하는 자리는 피곤하다. 여가시간이 아니라 업무 같은 느낌이 든다. 즐겁지가 않다. 차라리 책을 읽든가 아니면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더 유익할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얘기로 밤새 웃고 떠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쓸데없는’ 얘기들이 쌓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를 성장하게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누구의 말에서 영향을 받기보다 그의 삶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를 하다가도 가슴에 딱 걸리는 말을 그의 태도에서 발견하기 마련이다.
말과 마찬가지로 행동에도 시시한 날들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대단한 결과물을 낼 수는 없다. 작은 힌트들이 모여 문득 아이디어가 생겨나듯이 쓸데없어 보이는 일들이 모여 의미 있는 일상을 지탱하게 한다. 시간관리에 대해서 교육받은 대로 치열하게, 치밀하게 일상을 살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리고 정말 원하는 삶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일상이 습관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답답한 일이다. 익숙해지면 힘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하고는 안 맞다. 나는 딱히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성향도 못된다.
주변에 긴장되지 않는 사람이 많아야 행복하다. 전화하면 금방 나올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되나? 오랜만에 연락해도 왜 전화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무슨 얘길 해야 하나 미리 생각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오늘도 바쁜 스케줄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잠시 시간을 내 산책이라도 해 보는 건 어떨까. 어슬렁거리며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 통화도 하고. 그냥 시시한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이런 통화가 가능한 친구가 있다는 게 흐뭇할 것 같다.
그 시절처럼 시시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아야 한다.
나는 그래야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