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형은 겨우 7살이었다.
치매가 있으신 어머니는 했던 말을 반복해서 하신다.
앉은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수십 번 하기도 하고, 옛날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웃고 얘기하고 또 웃고를 숱하게 반복한다.
가족 한 명 한 명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대로 얘기하는데 거의 똑같은 내용이다.
대표적으로 욕을 얻어먹는 대상은 큰형이다. 큰형이 어릴 적부터 애 먹였던 얘기를 할 때면 표정에서나 말투에서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힘을 잔뜩 주며 소리를 높이신다, 다음으로 큰누나다. 맨 날 화장하고 돌아다닌 얘기며 집안일은 전혀 도와주지 않고 심지어 심한 욕까지 했다고 한다.
작은 형에 대해서는 말 잘 듣고 착했다고만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작은 형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작은누나는 성격이 아버지 닮았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한결같다. “너거 아부지는 그때 잘 죽었다. 아직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심심할 뻔 했노.”
가족에 관한 얘기는 이게 전부다.
이 내용을 가지고 번갈아가며 수시로 하는 게 일이시다.
그러다 어느 날 작은형에 대해 뜬금없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참 불쌍하다. 7살에 엄마가 죽었으니 얼마나 불쌍하노”
딱 두 번인가 들었다.
먼 곳을 응시하는 눈빛으로, 차분하게 한숨을 섞어 혼잣말하듯 하셨다.
어머니 과거 속에 얼마나 깊이 묻어 둔 얘기였는지는 모르지만 한두 번 꺼내고는 더 이상 꺼내지 않으신다.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보고 알았다.
엄마가 죽고 3개월 후에 새엄마가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내가 태어났다.
큰누나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욕을 한 것도 이해가 되고, 큰형의 반항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라도 분출할 수 있었던 형과 누나와 달리, 작은형은 7살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마음이 불안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후로 작은형을 볼 때마다 어린 7살의 표정이 가끔 보인다.
형제들은 모두 60이 넘었고 70이 다 되었다. 이미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경주 산소에 가면 아버지 무덤 곁에 있는 엄마 무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오십 년이 넘었으니 감정은 남아 있을까마는 그때 그 시절, 세상 무너지는 슬픔의 기억은 잊힐 수 없지 않을까.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응어리가 생기고, 한이 되고, 옹이가 박힌다면 인생이 얼마나 힘들까. 그러려니 생각하며 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인정하며 살자.
인생의 의문이 조금씩 풀리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다섯_시의_남자
#우리가_중년을_오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