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안겨 준 이발소

by 다섯시의남자

희망을 안겨 준 이발소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환경의 변화로(어려서 잘은 몰랐지만 어려워졌으리라 예상됨) 반야월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완전 시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에 살던 곳처럼 있을 것 다 있는 동네는 아니었다.

가끔 이발소를 찾아 옆 동네까지 가야 했는데 테마파크에 추억의 옛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면 거기에 딱 어울릴만한 그런 이발소였다.


거울 위에 있는 조잡한 액자며, 날카로운 면도 칼을 위한 가죽 띠, 비누거품 통, 시멘트로 미장 된 사각의 세면대.

아저씨는 오래되어 군데군데 빛이 바랜 흰색 유니폼을 입고 계시고, 비누 향과 신문에서 나는 종이 냄새, 거기다 찌든 머릿기름 향이 묘하게 어우러져 이발소만의 독특한 풍경에 향을 입힌 그런 곳이었다.


요즘은 미장원에 가면 머리는 금방 자르고 나온다. 한 달에 한 번씩 가니 묻지도 않고 딱 한 달 만에 와야 할 만큼 잘라준다. 기계로 끝부분을 먼저 밀고 가위로 쓱쓱 몇 번 자르고 나면 샴푸실로 간다. 샴푸 후에 다시 정리하면 끝이다. 밥 아저씨가 그리는 그림보다 훨씬 간단하다.

거기에 비해 이발소는 오래 걸린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긴 시간 공들여 작업하신다는 느낌이 든다. 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기보다는 혼신의 힘을 다한 작품세계를 표현해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이발소를 가 본 지 몇 십 년은 되었으니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어릴 적 반야월의 그 이발소에서 외운 시가 하나 있다. 머리하는 동안 멍하니 거울 위 액자에 있는 시를 반복해 읽다 보니 외워졌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 나도 낭만적인 글에 끌렸나 보다.


“폭풍이 부는 들판에도 꽃은 피고 / 지진 난 땅에서도 샘은 솟고 / 초토 속에서도 풀은 돋아난다. / 밤길이 멀어도 아침 해 동산을 빛내고 / 오늘이 고달파도 / 보람찬 내일이 있다. / 오! 젊은 날의 꿈이여 / 낭만이여 영원히…”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희망』이라는 시다.

초등학생이 줄줄 외우고 다닐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유명한 시인 줄은 당연히 몰랐다.

뭐라도 외운다는 건 그냥 안다는 것과 다르다. 되뇔 때마다 깊이 교감하게 되고 영향을 받게 된다.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들고 멍하니 있다 갑자기 그 시가 생각났다. ‘희망’이라는 말. 참으로 진부한 표현이라 요즘 아이들은 그 뜻을 이해할까 싶기도 한 그 말이, 어릴 적 이발소의 추억까지 소환해 가며 짧은 휴식시간을 추억에 젖게 한다.


매년 봄은 돌아오지만 우리는 늘 ‘새봄’이라 부른다.

새로운 봄, 따뜻한 오후에 희망을 안겨준 그 이발소가 문득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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