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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bean Aug 02. 2019

아마도 쇼핑 중독증 ? (2)

장난감에 대한 한풀이


 어린 시절에 자주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은 종이인형이었다. 나에겐 마론인형이 없었다. 언니에게는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언니가 엄마를 졸라서 샀던 인형의 침대가 있었던 거다. 기둥과 천장이 있고, 레이스가 둘러져 있는 예쁜 침대였다. 엄마는 그 침대를 볼 때마다 "저게 6천 원"이라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뜸하게 갖고 놀면 '저게 6천 원이나 한다. 왜 안 가지고 노느냐'며 언니에게 입을 댔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도 가지고 싶은 마론인형이 생겼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사주지 않았다. 수중에 오천 원이 있었기에, 천 원만 더 있으면 마론인형을 살 수 있었다. 언니와 나는 의논 끝에 엄마 지갑에서 천 원을 훔치기로 했다. 천 원을 꺼내면서 조마조마했던, 인형을 사러 뛰어가면서 즐거웠던, 드디어 인형이 생겨서 기뻤던,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인형놀이를 드디어 할 수 있어서 좋았던, 그런 마음들이 나를 지나갔다.


 낙관적이었던 내 예상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형을 들켜버렸다. 엄마는 우리를 혼내긴 했지만, 이미 산 인형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다음에 나는 언니와 마음껏 인형놀이를 했을까?




 우리 아이가 크는 요즘은 장난감이 참 많은 시절이다. 어린이용 만화마다 여러 가지 관련 상품이 제법 쏟아져 나온다. 딸아이는 좋아하는 만화가 생길 때마다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인형을 갖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에게 장난감은 매일 새로운 것들이 나오므로 다 사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사주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것들을 사주었다. 어느 크리스마스 날에는 최근 몇 달간 사주지 않았던 장난감 서너 개를 한꺼번에 사들고 와서 트리 밑에 놔두기도 했다. 아이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내가 아이가 엄마에게 사달라고 했는데도 못 갖게 된 것이 너무 안쓰럽고 안타깝게 느껴졌던 것이.


 그렇게 산 장난감이 조금씩 쌓여 갔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 몰래 자질구레한 것들을 버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가 버리지 말라고 한 것은 일단 버리지 않았다. 그게 장난감을 싼 포장지든, 단순히 자기가 낙서를 한 것이든 상관없었다. 아이에게 꼭 물어보고 버렸다. 그래서 처음 살 때부터 신중하게 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번번이 실행이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즉흥적으로 내 기분이 내킬 때에는 아이에게 별생각 없이 장난감을 사주고는 했다.


 애석하게도, 아이는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고 아이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여러 엄마들이 아이들은 원래 집에 있는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서로 바꿔서 가지고 놀자고 말하는 엄마도 있었고, 장난감을 주로 대여하는 엄마도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묵혀두는 것에 대해 타박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장난감을 사는 것은 나의 결핍에 대한 대리만족이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아이에게는 장난감보다 친구가 필요하다. 나는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어릴 때는 너무 소심해서 그랬고, 커서는 너무 예민하면서 자존심이 세서 그랬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 때마다 아이가 버릇없이 구는 것 같아서, 혹은 아이에게 나쁜 습관이 들까 봐 매번 혼내기에 바빴다. 나는 아이와 오롯한 친구가 될 수 없는 걸 인정하기까지도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고 타박할 것이 아니라 친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해줘야 했던 것이다. 나는 자매라도 있었지만, 우리 아이는 외동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천 원을 훔쳐서 샀던 마론인형을 결국 언니에게 주었다. 얼마나 갖고 놀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에게 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싫증이 났던 건지, 아니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갖고 놀고 싶지는 않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에 나는 구체관절 인형을 발견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언니에게 전송한다.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려서 갖고 놀기는 어렵지만, 사진을 찍어 보낼 때마다 내가 갖고 싶은 마음을 반, 언니가 사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씩 담았다. 마론인형을 사는 것은 요즘의 키덜트들이 피규어를 모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라서, 선뜻 살 수가 없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는 것이다. 딸아이의 장난감을 수없이 사면서, 나는 아이에게 사주는 것으로는 나의 결핍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마론인형을 마음껏 갖고 놀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아쉬워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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